하겐은 철문을 열어 둔 채 한참을 기다렸다.
루엔은 들것에 누워 그 시간을 세려 했지만 셋부터 뒤섞였다. 오른팔이 심장처럼 뛰었다. 세라는 물통을 받아 조금 마시고 그에게 건넸다. 루엔이 오른손을 들자 그녀가 물통을 거두었다.
“왼손.”
그는 왼손으로 받았다. 물을 반쯤 옷에 흘렸다. 세라는 그 물을 닦아 주지 않았다. 창을 무릎에 얹고 갱도 쪽을 보았다. 목도리 끝이 찢겨 있었다.
봉쇄를 맡았던 현장 인부들이 도착했다. 하겐은 그들과 입구에서 밧줄을 다시 연결했다. 등불을 낮게 밀어 넣어 움직임을 살핀 뒤, 지렛대로 부러진 목재를 받쳤다. 루엔은 그의 손에 주문의 빛이 생기는 것을 기다리다가 눈을 감았다. 손에는 줄과 나무만 있었다.
줄이 안쪽으로 들어가고 다시 팽팽해졌다. 흑철턱은 다리를 묶이는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정신을 잃은 짐승을 주갱도에서 끌어낼 때 암석 같은 등판이 레일을 긁었다. 루엔은 그 소리에 몸을 움츠렸다. 곁에 앉은 세라도 창을 잡았다. 짐승은 묶인 채 움직임을 멈췄다. 하겐이 고정된 줄을 하나씩 확인하고 나서야 철문 안쪽을 비췄다.
끼어 남은 사람은 없었다. 묶인 흑철턱이 문밖에서 숨 쉬고 있었다. 문에 새 쇠막대가 걸렸다. 하겐이 토벌 의뢰판을 떼어 들고 돌아오자 인부들이 들것을 들었다. 세라는 자기 발로 옆에서 걸었다. 루엔은 그녀의 걸음이 느려질 때마다 창이 바닥을 짚는 소리를 들었다.
의원은 그의 오른팔을 만져 보고 천띠를 잘라 냈다. 루엔이 몸을 세우자 하겐이 어깨를 눌렀다. 팔을 고정하는 동안 루엔은 이를 악물었다. 통증 사이로 의욕이 치솟았다가 곧 꺼졌다. 의원은 며칠간 지팡이를 쥐지 말라고 했다. 루엔은 며칠이냐고 물었고, 의원은 손을 펴 보라고 했다. 그는 끝까지 펴지 못했다.
세라의 붕대도 새로 감겼다. 그녀는 루엔의 침상 건너편 의자에서 창끈을 고쳐 맸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같은 방에 있을 수 있었다. 루엔은 그것이 얼마 전에는 할 수 없던 일임을 알았다.
“목도리 값도 보탤게.”
“이건 꿰매면 돼.”
세라는 찢어진 끝을 안으로 접었다.
“다리 약값은 아직 남았어.”
“알아. 나으면 다시 자루 나를게.”
그녀는 매듭을 당겼다. 루엔은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려다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이미 해 놓은 약속을 지킬 방법을 생각했다. 자루를 들 수 없는 동안 장터에서 끈을 꼬는 일은 할 수 있을지 물어보면 됐다.
하겐은 다음 날 돌아와 작은 나무패를 침상 옆에 놓았다. 초급 토벌 수습의 표식이었다. 흑송 폐광 의뢰에 루엔의 첫 공동 실적이 올랐다고 했다. 길드 자격 시험은 따로 남아 있으니, 지금은 팔부터 나으라는 말도 덧붙였다. 루엔은 패의 홈을 왼손 엄지로 만졌다. 그보다 더 좋은 패를 찬 마법사들이 어릴 때 장터를 지나갔었다. 그는 그들의 걸음만 보며 자랐다.
“이번에 셋이 한 걸 네 혼자 한 걸로 말하면 떼어 간다.”
“그렇게 말 안 합니다.”
하겐이 그의 팔을 보았다.
“대피굴에서 세운 방벽은 왜 바로 깨졌느냐.”
루엔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 돌진 소리를 떠올리자 배가 다시 굳었다. 그는 침상 위에서 발끝에 힘을 줬다.
“숨이 급했고, 지팡이 쥔 손도 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방벽은 처음 크기 그대로 만들었습니다.”
“그걸 다음에 고쳐라.”
나무패는 작았지만 금 간 지팡이보다 무거워 보였다. 루엔은 두 물건을 나란히 두었다. 최고의 토벌 마법사라는 말은 여전히 입안에서 컸다. 방 하나를 건너오는 데도 세라의 창과 하겐의 줄이 필요했다. 그는 그 말을 취소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만 다음번에 손이 저려 오면 무엇을 줄여야 하는지 알았다.
열흘이 지나 의원이 팔의 고정천을 풀어 주었다. 장터의 끈 꼬는 일은 품삯이 적었지만 그는 의원의 약값부터 따로 담았다. 세라가 마당을 지나갈 때 그에게 밧줄 끝을 던졌다. 루엔이 잡자 그녀는 반대편 기둥에 줄을 맸다.
“오늘은 다리 쉬는 날이야. 추는 가벼운 걸로 걸어.”
루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벤치에 앉는 것을 보고 나무추를 걸었다. 하겐이 오기 전이었다. 그는 금 간 지팡이 대신 빈 손을 폈다. 훈련을 허락받은 것은 작은 방벽 한 번뿐이었다.
추를 당겨 놓고 줄을 풀었다. 나무가 다가오자 목구멍이 조였다. 루엔은 반 걸음 물러나 숨을 내쉬었다. 손바닥 앞에 길목이 생겼다. 처음 면이 너무 곧았다. 그는 오른발을 눌러 박고 모서리를 비스듬히 고쳤다. 나무추가 청록빛 면을 긁으며 그의 옆으로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