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카리온

칼을 맡아드립니다 · 소설

1화 · 이름값은 받지 않습니다

노파는 칼보다 칼을 싼 보자기를 더 아꼈다.

보자기 귀퉁이가 젖은 계산대에 닿자 얼른 접어 손등에 올렸다. 도윤의 전당포에는 장마를 받는 대야가 넷 있었고, 천장에서는 다섯 군데에 물이 떨어졌다. 마지막 한 곳은 도윤이 빈 찻잔으로 받고 있었다.

“보자기는 안 파오.”

“칼을 봐야 보자기 값을 빼드리죠.”

노파의 눈이 가늘어졌다.

도윤은 계산대 위의 돈궤를 닫았다. 안에는 은자 일곱 냥이 있었다. 한 냥도 덜하지 않았다. 궤 뚜껑 위에 도검상회 등록서와 붉은 나무패가 놓여 있었다.

경원 십칠 년 팔월 열아흐레. 정오 전까지 등록비 일곱 냥을 낼 것.

임시패는 정오까지 정식패와 같은 감정 효력이 있었다. 오늘만 지나면 붉은 나무패에서 ‘임시’ 두 글자가 지워질 예정이었다. 밥그릇과 겨울 이불이 아니라 이름 있는 칼을 감정하고, 물건값보다 싼 감정료를 받지 않아도 되었다.

노파가 보자기를 풀었다. 검은 칼집에 은실로 매화를 감은 장검이었다. 손잡이 끝에는 구멍 난 옥 대신 해진 붉은 매듭이 달려 있었다.

“일곱 냥 주시오.”

도윤은 노파와 돈궤를 번갈아 보았다.

“가격을 아시는 분이 왜 전당포에 오셨습니까?”

“관값이 일곱 냥이오.”

“칼값을 물었습니다.”

“나는 관값을 말했소.”

도윤은 칼을 들어 무게를 쟀다. 칼집부터 지나치게 무거웠다. 이름난 칼처럼 보이려 애쓴 물건은 대개 장식이 무거웠다.

“누가 우리 가게를 알려줬습니까?”

노파가 문밖을 보았다.

“조 객주라는 사람이오. 영감이 죽기 사흘 전에 들고 온 칼인데, 그 사람이 귀한 물건일 수 있다고 했소.”

“남편분이 어디서 났다고 하던가요?”

“묻지 않았소. 죽을 사람한테 묻는 말은 살아 있는 사람이 듣고 싶은 대답만 나오니까.”

도윤은 손잡이를 잡았다. 칼날이 한 치 나오다가 걸렸다. 억지로 당기지 않고 내려놓았다.

“남편분은 무슨 일을 했습니까?”

“국수 삶았소.”

“칼은 안 쓰고요?”

“파 써는 칼이면 모를까.”

문밖에서 삿갓의 물을 터는 소리가 났다.

“제가 소개를 잘했군요.”

조태관은 젖지 않은 장화를 신고 있었다. 비가 오기 전부터 맞은편 처마 아래 기다린 사람의 장화였다. 뒤에는 회색 옷을 입은 사내 둘이 섰다.

태관은 접은 종이를 칼 옆에 펼쳤다. 관아의 오래된 현상방이었다. 붉은 먹으로 칼날을 가로지르는 홈 셋이 그려져 있었다.

“경원 원년 청하나루에서 마흔둘을 죽인 매화귀의 칼입니다.”

노파가 도윤을 보았다. 놀랐다기보다 이제야 조태관이 왜 친절했는지 알겠다는 얼굴이었다.

태관은 말을 이었다.

“범인은 죽었고 칼이 남았으니, 현상금 백 냥을 청구할 수 있겠죠. 유족이 자발적으로 처분한 기록과 독립 감정인의 장부가 있으면 됩니다. 박 노인께 일곱 냥, 도윤 공께 감정료 세 냥. 누구도 손해 보지 않습니다.”

“죽은 영감 이름으로 현상금을 받는 사람이 있잖소.” 옥순이 말했다.

“죽은 사람은 돈을 쓸 일이 없습니다.”

태관은 계산대의 붉은 나무패를 손가락으로 돌려놓았다. 뒷면의 ‘임시’ 두 글자가 위로 왔다.

“정오까지 세 냥 더 생기면 지붕도 고치시겠군.”

거짓 한 줄이면 패도 지붕도 남는다. 도윤은 등록서를 보았다. 정식 감정인이 되어 처음 남기는 장부가 거짓말이면, 그 뒤에 받는 감정료도 전부 가짜 이름값이었다.

“어떤 문장을 원합니까?”

태관이 웃었다.

“청하나루 매화검. 진품. 그 두 마디면 충분합니다.”

도윤은 칼집 입구의 기름때를 가느다란 쇠꼬챙이로 걷어냈다. 왼손 약지와 새끼손가락은 끝까지 굽지 않았다. 칼집을 무릎으로 누르고 오른손으로 조금씩 흔들자 붉은 가루와 함께 칼날이 빠져나왔다.

세 개의 홈이 있었다. 간격과 깊이가 자를 대고 그은 듯 같았다.

“그림과 똑같지 않소?” 태관이 물었다.

“그림에는 무게가 없어서요.”

도윤은 칼등을 손톱으로 두드렸다. 맑지 않은 소리가 짧게 났다. 셋째 홈에서 소리가 한 번 꺾였다.

그는 손잡이의 대나무 못을 밀어냈다. 태관 뒤의 사내 하나가 앞으로 오자, 도윤은 칼을 놓지 않은 채 말했다.

“진품 감정은 칼자루를 풉니다. 싫으면 가짜로 적고 끝내죠.”

태관이 손을 들어 사내를 멈췄다.

도윤은 굽지 않는 두 손가락에 천을 감고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밀었다. 오래 붙은 손잡이가 빠지며 칼날의 꼬리인 슴베가 드러났다. 검은 때 아래에 작은 글자가 찍혀 있었다.

경원 십일 년. 죽림 군영.

도윤은 현상방의 날짜 옆에 슴베를 놓았다.

“청하나루 일은 경원 원년입니다. 이 칼은 그보다 열 해 뒤에 군영에서 만든 연습도입니다.”

“슴베만 나중에 붙였겠지.”

옥순이 도윤을 봤다.

“슴베가 뭐요?”

“손잡이 안에 들어가는 칼날의 꼬리입니다. 다른 슴베를 달 수는 있어도 접쇠한 자국은 남습니다.”

도윤은 기름 묻은 헝겊으로 칼날과 슴베의 경계를 닦고 작은 돋보기를 갖다 댔다.

“이건 이음선이 없습니다. 칼날부터 연호까지 한 쇠로 두드린 죽림 군영 연습도예요.”

문밖에서 낮은 웃음이 났다. 비를 피하던 짐꾼 하나가 대화를 듣고 있었다. 태관이 돌아보자 웃음이 멎었다.

도윤은 홈에 기름 한 방울을 떨어뜨리고 흰 천으로 문질렀다. 붉은 녹 아래에서 검은 먹과 고운 쇳가루가 묻어 나왔다. 홈 바닥에는 줄을 왕복한 반듯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이건?” 옥순이 물었다.

“오래된 녹처럼 보이게 바른 겁니다. 셋째 홈은 너무 깊게 줄질해서 금까지 갔고요.”

“진품이라고 쓰시오.” 태관이 말했다.

도윤은 그를 올려다봤다.

“방금 설명을 못 들었습니까?”

“아주 잘 들었지. 그래서 당신이 정식 감정인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도 들었고.”

상회 등록서는 태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지만, 등록을 심사하는 사람들에게 태관의 돈이 닿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옥순이 칼을 보자기로 다시 싸려 했다.

“안 팔겠소.”

태관 뒤의 사내가 문을 막았다.

“유족이 거래를 거부하면 집에서 나온 칼을 관아에 넘기면 됩니다. 그 뒤에는 박 노인도 가서 설명하셔야겠지요.”

“당신들이 관아 사람입니까?” 도윤이 물었다.

“현상 청구인입니다.”

“사람을 끌고 갈 권리는 없고요.”

“그 칼과 장부가 생기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도윤은 가게 안쪽의 덧문을 열었다. 시장을 향한 창이 활짝 열리자 빗소리와 사람 냄새가 들어왔다. 맞은편 처마의 짐꾼, 떡 장수, 우산을 고치던 노인이 한꺼번에 안을 보았다.

“비 들어오네.” 태관이 말했다.

“거래는 밝은 데서 합니다.”

도윤은 옥순에게 물었다.

“칼이 연습도라는 걸 들으셨습니까?”

“들었소.”

“남편분이 어디서 얻었는지는 모른다고 하셨고요.”

“모르오. 모르는 걸 안다고 팔지는 않겠소.”

도윤은 손가락으로 값을 셌다.

“연습도 값 한 냥. 이 칼의 진짜 이름을 제 첫 장부에 남길 권리 여섯 냥. 합쳐서 일곱 냥에 사겠습니다.”

“장부의 이름이 칼보다 여섯 배나 비싸오?”

“제 첫 장부에 값을 매기려고요. 칼은 싸지만 거짓말은 비쌉니다.”

옥순은 잠시 돈궤와 붉은 나무패를 봤다.

“내 이름으로, 내가 판 것으로 적으시오. 영감이 살인마였다고는 적지 말고.”

“그 조건이면 삽니다.”

도윤은 같은 크기의 감정·거래표 두 장을 꺼냈다. 한 장은 장부에 붙이고 다른 한 장은 매도인이 갖는 쌍표였다. 두 장에 날짜, 물건, 매도인 박옥순, 매매가 일곱 냥을 나란히 적었다.

“현상 청구인은 감정 전에 자기가 주장하는 물건의 이름과 청구 목적을 먼저 씁니다. 그래야 감정 결과가 마음에 안 든다고 의뢰를 부정하지 못하죠.”

도윤이 빈 칸을 태관 쪽으로 돌렸다.

“백 냥을 청구하려면 아시겠군요.”

태관은 이미 원하는 칼과 유족의 동의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는 두 표에 똑같이 적었다.

경원 원년 청하나루 매화귀 사용 검. 현상금 청구 입회.

그 아래에 이름을 쓰고 손도장을 눌렀다.

도윤은 태관이 쓴 문장을 소리 내어 읽었다. 창밖의 짐꾼이 한 발 가까이 왔다.

이제 도윤이 감정란에 붓을 댔다.

“진품.”

태관의 입가가 올라갔다.

도윤은 그 뒤를 이어 두 장에 한 줄씩 번갈아 같은 글을 썼다.

“경원 십일 년 죽림 군영 제작 연습도의 진품. 세 홈은 최근 줄질하고 먹과 쇳가루를 바른 것. 경원 원년 청하나루 살인검과 무관함.”

태관의 웃음이 멎었다.

도윤은 두 표를 포개 글자가 같은지 창가의 빛에 비췄다. 그런 뒤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었다.

“박옥순 어르신. 이 내용과 일곱 냥 거래에 동의하면 두 장 모두에 손도장을 찍으십시오.”

옥순은 보자기를 접어 칼 아래에 깔았다. 그리고 엄지에 먹을 묻혀 두 장의 매도인 칸을 차례로 눌렀다.

도윤은 붉은 임시패로 두 장의 감정란에 도장을 찍었다. 아직 정오 전이었다.

태관이 종이를 낚아채려는 순간, 옥순이 위쪽 표를 먼저 잡아 창밖으로 내밀었다.

“떡 장수 양반, 잠깐 맡아주시오.”

떡 장수가 표를 받아 높이 들었다. 태관의 손은 빈 창틀만 움켜쥐었다. 다른 한 장은 도윤이 굽지 않는 손가락 아래 눌러두었다.

“그게 여섯 냥짜리 이름입니다.” 도윤이 말했다. “당신 손도장까지 찍힌 거짓 청구의 이름.”

도윤은 돈궤에서 은자 일곱 냥을 꺼내 하나씩 계산대에 놓았다. 옥순이 일곱 개를 직접 세고 보자기에 쌌다.

“이제 칼은 누구 것이오?” 옥순이 물었다.

“제 겁니다.”

“저 표에는 영감이 살인마라고 쓰였소?”

떡 장수가 창밖에서 대답했다.

“아니오. 청하나루 칼과 무관하다고 쓰였소.”

옥순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은 칼날을 작업대의 쇠 물림쇠 사이에 끼웠다. 셋째 홈이 모서리에 걸렸다.

태관이 말했다.

“지금 뭘 하는 거지?”

“감정은 끝났습니다. 이제 산 물건을 다시 현상금 증거로 쓰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도윤은 체중을 실었다. 칼은 세 번째 홈에서 너무 쉽게 부러졌다. 깊게 왕복한 줄질이 만든 금을 따라 파단이 벌어졌다.

반 토막 난 칼날이 대야에 떨어져 녹물이 튀었다. 창밖의 사람들이 일제히 숨을 들이켰다.

태관은 도윤 쪽 표를 낚아채 가운데를 찢었다. 두 조각 모두에 그의 손도장과 감정 문장이 걸쳐 남았다.

“한 장 더 있소.” 옥순이 말했다.

태관이 창밖으로 손을 뻗자 떡 장수가 표를 등 뒤로 감췄다. 우산을 고치던 노인이 망치를 들고 물었다.

“장터 순라를 부를까?”

태관은 옥순의 팔을 잡으려 했다. 옥순이 은자가 든 보자기를 품에 안고 창가로 한 걸음 물러섰다.

“칼은 내 이름으로 팔았고, 저 표에는 가짜라고 적혔소. 나를 끌고 가서 무슨 증거로 쓰려오?”

도윤이 찢어진 두 조각을 주웠다.

“사람은 처음부터 거래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태관의 주먹이 도윤의 입술에 꽂혔다. 도윤은 작업대에 등을 부딪쳤다. 대야 하나가 엎어져 바닥으로 빗물이 흘렀다.

회색 옷의 사내 둘이 움직였지만, 창밖에서는 누군가 순라를 부르러 뛰는 발소리가 났다. 태관은 부러진 칼, 찢어도 글이 남은 표, 떡 장수 손의 온전한 표를 차례로 봤다.

“정식 패가 나오나 보지.”

“이미 봤잖습니까. 임시라고.”

태관은 웃지 않았다. 사내들을 데리고 빗속으로 나갔다.

옥순은 떡 장수에게 표를 돌려받아 품 안 깊이 넣었다. 보자기 한 귀퉁이로 도윤의 터진 입술을 눌렀다. 파와 밀가루 냄새가 났다.

“돈은 장례 치르고 갚겠소.”

“갚으면 제가 증거를 공짜로 산 셈이 됩니다.”

“그럼 국수로 갚지.”

“일곱 냥어치면 죽을 때까지 먹어야겠네요.”

“말하는 걸 보니 오래 살진 않겠소.”

옥순은 시장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막았던 사내들은 없었다. 그녀의 품에는 자기 이름으로 판 기록이 있었고, 보자기에는 자기 장례가 아닌 남편의 장례를 치를 돈이 들었다.

정오 종이 울릴 때 도검상회 심부름꾼이 도착했다.

“등록비 준비됐습니까?”

도윤은 열린 돈궤를 보여줬다. 안에는 칼에서 뽑은 대나무 못 하나뿐이었다.

심부름꾼은 부러진 칼과 터진 입술을 차례로 봤다.

“일곱 냥으로 저걸 샀다고요?”

“칼 한 냥, 증거 여섯 냥입니다.”

“증거가 칼보다 비싸군요.”

“거짓말이 이름값을 많이 받아서요.”

심부름꾼은 붉은 나무패를 가져갔다. 도윤은 등록서를 뒤집었다. 뒷면에 굵은 붓으로 글을 썼다.

칼을 맡아드립니다.

그 아래에는 조금 작은 글씨를 붙였다.

이름값은 받지 않습니다.

비가 잦아들 무렵, 창밖에서 누군가 새 글씨를 읽었다.

“아까 칼 부러뜨린 전당포가 여기요?”

도윤은 고개를 들었다.

젖은 도롱이를 쓴 소년이 칼 한 자루를 안고 서 있었다. 칼집에는 관아의 압수 딱지가 세 겹 붙어 있었다.

“이름 때문에 못 파는 칼도 받소?”

도윤은 빈 돈궤를 닫았다.

“그 이름부터 들어봅시다.”

1화 · 이름값은 받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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