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카리온

파란 창의 행방 · 소설

1화 · 다른 그림

“잠깐만요. 이거 내 그림 아니에요.”

서도윤은 사다리의 잠금쇠를 접다가 손을 멈췄다. 전시실의 사다리에서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조금 다르게 들렸다. 천장이 높지 않은 누리 갤러리에서는 작은 말도 흰 벽을 돌아 다시 귀에 닿았다. 그러나 방금 한지우가 한 말에는 반향이 없었다. 그 말만 벽에 달라붙은 것처럼 또렷했다.

벽 한가운데에는 《한밤의 창》이 걸려 있었다. 가로 팔십, 세로 백 센티미터. 도윤이 어젯밤 높이를 맞췄고, 아래쪽 고정 장치를 손으로 한 번 더 눌렀던 그림이었다. 코발트색 창틀 너머에 짙은 남색 강변이 보이고, 강물에는 작은 주황빛이 길게 끌려 있었다. 정면만 보면 지우가 전시 안내문에 보내 준 사진과 같았다.

지우는 가까이 다가가고도 그림 앞에 서지 않았다. 몸을 틀어 왼쪽을 보았다. 도윤도 그쪽으로 갔다. 그는 아직 사다리 한쪽을 손으로 붙들고 있었다.

“어느 부분이 다른데요?”

“옆면 아래요. 여기.”

지우의 손가락이 캔버스를 감싼 왼쪽 옆면의 아래쪽을 가리켰다. 그는 그림을 옮길 때 옆면을 먼저 보는 사람이었다. 튀어나온 못이나 찢어진 천이 손에 걸리는지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면이 짙은 파랑이라는 사실도 기억했다. 하지만 어느 파랑 아래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처음 바탕을 연녹색으로 칠했어요.” 지우가 말했다. “나중에 파랑을 덮으면서 여기만 손가락 마디만큼 남겼고요.”

그는 무심코 천장의 조명을 올려다봤다. “빛 때문에 안 보이는 걸 수도 있잖아요.”

지우가 그를 봤다. 쏘아붙이지도 않았는데 도윤은 이미 자신이 틀린 질문을 했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전시실 벽의 조명 스위치를 내렸다. 낮의 희끄무레한 빛만 남았다. 옆면에는 여전히 파랑뿐이었다.

“내가 칠한 걸 내가 못 알아볼 거라고 생각해요?”

“그 뜻은 아니었습니다. 그림을 내리면 더 잘 보이겠죠.”

도윤이 장갑을 벗고 걸쇠를 풀었다. 지우는 스위치 곁에서 왼쪽 옆면을 지켜봤다. 도윤이 오른쪽 아래와 밑변을 받쳐 그림을 벽에서 몇 센티미터만 띄우자 왼쪽 면 전체가 보였다. 그는 손끝으로 면을 가리지 않으려고 받침을 바꿨다. 손바닥 안에 있는 캔버스는 어젯밤과 같은 무게였다. 겉면도 같은 밤이었다. 다만 지우가 말한 자리에 연녹색이 없었다.

“흰 천을 벗긴 다음에 제가 이걸 걸었어요.” 그가 말했다.

“그러니까 묻고 있는 거예요. 그때도 없었어요?”

도윤은 대답을 서둘러 만들지 않았다. 그는 그날 밤 작업 순서를 짚었다. 하역장에서 입고 사진을 찍고, 천을 벗기고, 높이를 재고, 나사를 조이고, 밤 열 시에 문을 잠갔다. 전시실 안쪽에 서서 수평을 맞춘 기억은 선명했다. 왼쪽 면은? 손이 닿았을 테지만 눈을 댄 적은 없었다.

“못 봤습니다.”

지우는 스위치 곁에서 그림의 옆면을 계속 보았다. “어젯밤 여기 있었던 사람은 당신이잖아요.”

그 말이 틀리지 않아 도윤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그림을 바꿨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그는 그림을 안전하게 벽 아래 받침에 세운 뒤 설치 확인서를 가져왔다. 맨 아래 서명이 자기 것이었다. 확인한 대상은 액자, 높이, 고정 상태였다. 작품 자체를 판별한다는 항목은 없었다. 그런 항목이 없다는 사실이 지금은 변명처럼 들렸다.

지우가 휴대전화를 꺼냈다. 일요일 저녁, 작업실 바닥에 세운 그림이 화면에 나타났다. 그녀는 손가락을 벌려 사진을 키웠다. 코발트색 창틀, 야간 강변, 주황빛. 사진의 그림은 벽에 있던 것과 정면이 거의 같았다. 그러나 왼쪽 옆면 아래에는 분명 연녹색이 있었다. 초점이 아주 날카롭지는 않아도 색의 위치를 착각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음 사진에는 원화를 싸는 흰 천과 그 모서리의 붉은 실이 찍혀 있었다.

도윤은 그 사진을 한 번 더 봤다. 지우가 찍은 시간을 물으려다 멈췄다. 화면 속 작업실 물감 통, 발에 밟힌 신문, 천의 접힌 모양까지 어젯밤 운송 물건과 이어졌다. 확인해야 할 것은 시간을 따지는 말싸움이 아니라 그 사이 어디서 바뀌었는지였다.

“일요일에 출발하기 직전이라고 했죠?”

“네. 그냥 마지막으로 찍어 둔 거예요. 이게 이런 데 쓰일 줄은 몰랐죠.”

지우는 그가 볼 수 있게 사진을 건네주지 않았다. 자기 손에 든 채 화면의 옆면과 눈앞의 옆면을 번갈아 가리켰다. 그 거리가 적당하다고 도윤은 생각했다. 서로 아직 같은 편이 아니었다.

사무실 문이 열렸다. 오민석이 회색 재킷의 소매를 만지며 전시실로 나왔다. 그는 벽에서 내려온 그림보다 두 사람이 떨어져 선 간격을 먼저 본 듯했다.

“무슨 일입니까?”

“그림이 바뀌었어요.” 지우가 말했다.

민석은 웃음을 짧게 흘렸다. “바뀌었다니요. 어젯밤 설치한 그대로인데.”

“그걸 누가 그렸느냐가 다르다고요.”

지우가 사진을 내밀었지만 민석은 손에 받지 않았다. 멀리서 고개만 기울였다. “색이 살짝 달라 보이는 건 조명 탓일 수 있어요. 금요일이 개막입니다. 사전 공개 때 최원호 사장님이 이 그림 보고 팔백만 원까지 말했어요. 이럴 때 소란이 생기면 작가도 손해예요.”

도윤은 그 말을 듣고 지우를 봤다. 그녀는 원호라는 이름보다 팔백만 원이라는 액수에 놀란 얼굴이었다.

“원호 씨가 마음에 든다고는 했어요. 제가 판다고 한 적은 없어요.”

“구매 의사를 보였다는 얘깁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제 그림을 걸어야죠.”

민석이 설치 확인서를 손끝으로 들어 올렸다. 종이의 맨 아래에서 도윤의 서명이 뒤집혀 보였다. “도윤 씨가 밤에 최종 확인했는데요. 다른 그림이 들어왔다면 여기서 알아야 했겠죠.”

도윤은 서류를 가져오지 않았다. 물건의 설치 상태에 서명한 사람이 자신이라는 사실은 그대로 두어야 했다. 다만 그 서명으로 지우의 눈앞에 있는 차이를 덮을 수는 없었다.

“확인서에는 제가 걸고 문을 잠근 때가 적혀 있습니다. 그 전에 들어온 그림이 무엇인지, 그 뒤에 누가 문을 열었는지는 따로 봐야 합니다.”

민석의 입가가 조금 굳었다. “범인 찾는 놀이부터 하자는 겁니까?”

“아니요. 없어진 작품을 찾자는 겁니다.”

도윤은 문득 어젯밤 마지막으로 내려 본 전시실을 떠올렸다. 모든 그림이 제자리에 있어 안심했었다. 그가 말한 ‘제자리’는 벽에 맞춘 위치일 뿐이었다. 그림 안의 어느 밤이 걸려 있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지우가 휴대전화로 현재 그림의 옆면을 찍었다. 그녀는 바닥에 쪼그려 앉아 일요일 사진과 같은 거리와 각도를 맞추려 했다. 도윤은 조명 스위치를 다시 켜지 않고 작은 발판을 밀어 주었다. 지우는 발판을 쓰지 않고 사진을 찍었다. 원본 파일 두 장을 보존한 뒤 그에게 사본을 보냈다.

“이게 이상하다고 인정하죠?”

“네. 이 면은 다릅니다.”

“그럼 금요일까지 찾아요. 그때까지 제 이름 아래 이 그림은 못 걸어요.”

민석이 ‘전시 일정’이라고 다시 말했지만 지우는 대꾸하지 않았다. 도윤은 사진을 열었다. 두 장을 번갈아 넘길 때마다 왼쪽 아래에 초록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코발트 창틀은 그대로였으므로 차이가 더 작고 더 확실했다.

그는 그림의 정면을 다시 보았다. 짙은 남색 강물에 주황빛이 길게 흘렀다. 설치할 때는 무게와 수평의 문제였던 물건이 누군가 며칠이고 덧칠하며 남긴 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그 밤의 겉만 옮긴 사람이었다.

지우는 원본 출발 사진을 다시 화면에 띄웠다. 그녀의 손톱 끝 바로 밑에 연녹색 자국이 있었다. 도윤은 그 작은 면을 잃지 않으려고 휴대전화를 자기 눈높이까지 올렸다.

1화 · 다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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