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정식으로 지우에게 돌아온 뒤 보름이 지난 토요일 오후 두 시, 작업실 문에는 A4 종이 한 장이 붙었다. 오늘 세 시부터. 되찾은 그림을 보여 드립니다. 누리에서 쓰던 금박 초대장이나 큰 포스터는 없었다. 마지막 획이 유난히 길게 뻗은 지우의 손글씨였다. 도윤은 문 옆에서 그 종이가 바람에 들뜨지 않도록 테이프를 한 조각 더 눌렀다.
작업실 안쪽에는 《한밤의 창》이 아직 벽에 기대어 있었다. 확인 절차가 끝나 돌아왔다는 연락을 받았던 날에도 도윤은 바로 보러 오지 않았다. 지우가 직접 열어 보고 싶다고 했다. 그 뒤로 받침을 고르고 작은 공개 관람 시간을 정했다. 오늘은 처음으로 남들이 보는 벽에 걸 날이었다.
“못 온다는 사람이 꽤 있어요.” 지우가 휴대전화의 답장을 훑으며 말했다.
“와야 할 의무는 없죠.”
“그 주 내내 봐야 할 의무가 없던 것들만 보긴 했네요.”
지우는 가볍게 웃고 그림 쪽으로 갔다. 도윤은 받침대가 흔들리지 않는지 두 번 눌렀다. 흰 벽에는 이전 전시의 못 자국도 없었다. 선반 하나와 물감 통을 옮겨 만든 공간이었다. 갤러리보다 훨씬 좁았지만 그림과 보는 사람 사이에는 충분한 거리가 생겼다.
그는 물감 통을 옮기던 오전을 떠올렸다. 지우는 어느 벽을 쓸지 직접 골랐다. 처음에 도윤이 제안한 자리에는 문을 열 때 들어오는 바람이 닿았다. 지우가 손등으로 바람을 느껴 보고 다른 쪽으로 옮기자고 했다. 도윤은 아무 말 없이 받침을 들었다. 한 번 그림을 잃은 뒤라 모든 선택을 지나치게 조심하는 듯도 보였지만, 그가 판단을 대신할 이유는 없었다.
지우는 관람객이 서게 될 선을 테이프로 바닥에 표시하려다 그만두었다. “여기까지 들어와도 돼요. 작업실인데 너무 전시장 흉내를 내는 것 같아서.” 도윤은 작은 의자만 벽 아래에 붙여 놓았다. 누리의 초대장에는 정해진 시작과 순서가 있었지만 오늘은 그림을 보는 사람이 서로 비켜 설 정도면 충분했다. 모자란 것은 공간보다 여전히 그림이 제자리에 있다는 확신이었다.
그는 작업실 문을 한 번 열고 닫아 바람을 살폈다. 그림을 걸 자리의 종이가 흔들리지 않았다. 할 수 있는 확인은 그 정도였다. 나머지는 지우가 자기 그림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에야 끝날 일이었다.
문 밖의 안내문이 살짝 흔들렸지만 떨어지지 않았다.
“왼쪽 들어 주세요.”
도윤이 장갑을 끼고 아래 모서리를 받쳤다. 지우가 다른 쪽을 들었다. 그는 첫날 누리 전시실에서 벽에 걸린 것을 몇 센티미터 들어 올리던 손의 위치를 기억했다. 그날은 있어야 할 연녹색이 없음을 직접 봤다. 오늘은 제자리에 돌아온 원화에서 그 색을 다시 확인할 차례였다.
“높이는 이 정도면?”
“잠깐. 옆부터 볼게요.”
그녀가 캔버스를 세우고 왼쪽 옆면 아래를 확인했다. 연녹색 밑칠 자국이 있었다. 도윤도 그 자리를 봤다. 이제는 둘 다 사진을 꺼내지 않아도 알았다. 지우가 고개를 끄덕인 뒤에야 도윤은 고정 장치에 그림을 걸었다. 그는 수평계를 올리고 물러났다. “왼쪽으로 조금?”
“아니요. 이 정도.” 지우가 말했다.
도윤은 더 만지지 않았다. 평평한 선 하나를 얻으려고 남의 선택까지 조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림 안의 강물에 비친 주황빛은 오후 햇빛 아래에서도 길게 남았다.
세 시가 조금 넘어 해숙이 먼저 왔다. 액자점에서 짧은 꽃가지를 가져와 문 옆에 놓았다. 그녀는 그림 앞에서 한참 말이 없었다. “나는 그날 액자만 보고 그림은 못 봤네요.”
“오늘은 그림부터 봐 주세요.” 지우가 답했다.
해숙은 정면에서 두 걸음 물러나고 다시 한 걸음 다가갔다. 도윤은 그녀가 전문가답게 액자의 이음새부터 훑을 거라 생각했다. 해숙은 먼저 강물의 주황빛을 봤다. 도윤은 그 선택이 조금 우스우면서도 좋았다.
윤호는 빨간 운동화를 바닥에 문질러 먼지를 털고 들어왔다. “형 가게 배달 끝나고 왔어요.” 그는 도윤을 보며 카트 바퀴를 갈아야 한다고 농담했다. 도윤은 카트에 대해서는 지지 않으려다가, 오늘은 그 얘기를 길게 하지 않았다. 윤호가 경찰에 전한 목격 이후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도윤이 먼저 사진 한 장으로 그를 몰아세웠다는 사실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날 사진 보여 준 방식은 미안했다.” 도윤이 말했다.
“한 번 더 사과하면 진짜 선배 같아져요.” 윤호는 벽의 그림을 가리켰다. “이거 보러 왔으니까요.”
최원호도 카페 문을 잠깐 비우고 왔다. 그는 그림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 처음부터 구매를 말하지 않았다. 지우가 먼저 “오늘은 팔지 않아요”라고 했다. 원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은 오 사장님 말을 듣고, 작가한테 한 번도 확인하지 않았네요. 돈 얘기는 그분과 풀겠습니다. 오늘은 보러 왔어요.”
도윤은 지우가 바로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 것을 봤다. 그녀는 사과를 받아야 할 쪽이었다. 원호도 더 설명하지 않았다. 그림을 보는 시간이 두 사람에게 필요해 보였다.
관람객은 몰려오지 않았다. 포스터를 기억한 동네 친구 둘이 먼저 왔고, 저녁 무렵에는 미술을 배우는 학생 셋이 왔다. 작업실 바닥에 신발 자국이 조금씩 늘었다. 누리 갤러리의 예정된 규모와 비교할 수 없는 숫자였다. 하지만 이곳에 선 사람은 모두 지우가 실제로 그린 그림 앞에 있었다.
한 학생이 왜 강물이 남색인데 불빛만 주황색이냐고 물었다. 지우는 처음에는 그 빛을 더 크게 칠했다고 말했다. 너무 커서 강 전체가 한 불빛의 그림자처럼 보여, 며칠 뒤 다시 줄였다고. 도윤은 그녀가 그 며칠을 어떤 마음으로 보냈는지 추측하지 않았다. 말하는 동안 지우의 손이 물감의 두께를 공중에서 그렸고, 학생들은 그 손을 따라 그림을 봤다.
다른 관람객은 전시장에 걸렸던 대체 그림을 물었다. “정면으로 봐서는 정말 비슷했나요?”
“비슷하게 만든 거죠. 같은 그림은 아니에요.” 지우가 말했다. “처음엔 저도 자꾸 옆면 얘기부터 했어요. 그게 제일 빨리 보여 줄 수 있는 차이였으니까.”
그녀는 잠깐 옆면을 봤다가 그림의 중앙을 가리켰다. “하지만 제가 그린 건 저 색 하나 때문이 아니에요. 어두운 방에서도 불을 끄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느낌을 그리고 싶었어요.”
도윤은 문가에서 그 말을 들었다. 사건 전까지 그는 작품을 크기와 무게, 걸리는 높이로 기억했다. 지우가 설명할 때에야 코발트 창틀 안에 있는 밤을 처음 천천히 보았다. 첫날 자신이 든 그림은 같아 보였지만, 그녀가 며칠을 덧칠하며 줄인 빛까지 담고 있지는 않았다.
관람 시간이 끝난 뒤 두 사람은 의자를 접었다. 지우가 빈 종이컵을 모았고 도윤은 마지막 손님의 발자국 쪽을 닦았다. 해숙의 꽃가지는 문 옆에 그대로 있었다. 곧 쓰레기통에 넣어야 할 컵과 내일까지 둘 꽃가지가 함께 보였다. 크고 완벽한 개막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의 전시는 취소할 이유가 없었다.
“다음에 새 그림 걸 때도 도와줄래요?” 지우가 물었다.
“그림 먼저 보여 주면요.”
“옆면부터 볼 건가요?”
“이번엔 정면부터요. 그다음에 옆면을 볼게요.”
지우가 웃었다. 도윤은 벽에 걸린 《한밤의 창》을 한 번 더 봤다. 두 사람 사이에 남은 것은 거창한 약속이 아니라, 다음 그림을 함께 볼 수 있다는 작은 일의 자리였다. 그는 불을 끄기 전에 지우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