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늦은 오전, 도윤은 지우를 누리의 뒷문으로 데려갔다. 전시실 안에서는 민석이 전화로 개막 준비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뒷문 옆 하역장은 그 목소리가 닿지 않을 만큼 좁고도 멀었다. 접이식 카트, 낮은 경사판, 벽의 클립보드가 전부였다. 도윤에게는 갤러리에서 가장 익숙한 자리였다.
카트의 오른쪽 바퀴는 오래 닳아 바닥에 반달 모양의 자국을 남겼다. 도윤은 그 자국을 짚었다. “어제 작업실에서 그림 받을 때도 이 카트를 썼습니다.”
“바퀴를 보면 무슨 그림이 실렸는지도 알아요?”
“그건 아니죠. 대신 사진을 남겼어요.”
도윤은 벽의 클립보드에서 일요일 입고 기록을 빼냈다. 사진을 찍어 전송하는 습관이 있어 원본 파일도 휴대전화에 있었다. 작은 인화 사진에는 천을 반쯤 벗긴 《한밤의 창》이 세워져 있었다. 카트 바퀴, 뒷문 표지, 흰 천의 붉은 실도 한 프레임 안에 들어왔다. 다만 인화지에서는 캔버스 왼쪽의 작은 색까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도윤이 휴대전화의 원본 파일을 열어 그 부분을 두 손가락으로 확대하자, 왼쪽 옆면 아래의 연녹색이 드러났다. 그는 원본 파일을 지우에게도 보냈다.
지우가 화면의 연녹색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여기까지는 제가 보낸 그림이 왔네요.”
“네. 제가 찍었습니다.”
“그다음에는요?”
도윤은 하역장에서 전시실까지의 짧은 길을 눈으로 따라갔다. 그 사이에 누가 원화를 빼돌렸다고 말하면 쉬웠다. 하지만 자신이 본 것과 보지 않은 것을 갈라야 했다. 그는 천을 벗겼고 정면을 향해 세웠고 나사를 조였다. 그 후 몇 분은 다른 액자를 정리했다. 민석과 윤호도 그날 갤러리에 있었다. 도윤에게 그들의 매 순간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여기서 벗겨 전시실에 옮겼어요. 정면을 봤지만 옆면을 따로 대조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본 게 지금 저 그림이라는 건 말할 수 있어요. 원화가 언제 빠졌는지는 아직 못 말합니다.”
지우는 입고 사진을 자기 전화의 출발 사진 옆에 띄웠다. 출발과 도착에는 같은 연녹색이 있었다. 자신에게 불리한 시간대가 좁아지는 것을 도윤도 알았다. 원화는 갤러리에 들어왔고, 그가 밤 열 시에 문을 잠글 무렵 벽에는 다른 것이 있었을 가능성이 커졌다.
“지금은 서명 때문에 당신을 먼저 의심할 수밖에 없어요.” 지우가 말했다.
“그럴 만합니다.”
그는 순순히 말해 놓고도 속이 쓰렸다. 어젯밤 문을 잠근 손은 자기 손이었고, 아침에 그림이 다르다고 말한 사람은 사진을 가진 지우였다. 어느 쪽의 기억이 더 믿을 만한지 저울에 올리면 답이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고 싶다는 마음이 작품을 찾는 일보다 앞서면 진짜 동선을 놓칠 것 같았다.
사무실에서 민석이 불렀다. 책상 위에는 초대장 묶음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는 두 사람에게 앉으라고 했지만 누구도 앉지 않았다.
“손님들에게는 아직 말하지 않았죠?”
“제 그림이 없어졌다고는 신고할 겁니다.” 지우가 답했다.
민석은 초대장 한 장을 집어 가장자리를 맞췄다. “작가가 잠깐 혼동했다고 하면 끝날 일을요? 이미 금요일 일정이 잡혔습니다. 도윤 씨가 설치 중 손상 여부를 다시 적는 선에서 정리하면 돼요.”
“손상과 바뀐 건 다릅니다.” 도윤이 말했다.
“회사 일은 원인을 찾아야 하니까요. 마지막 확인에 이름을 쓴 사람이 누구죠?”
민석의 말은 질문이라기보다 답이 적힌 서류를 읽는 듯했다. 도윤은 확인서를 쳐다봤다. 일을 유지하려면 다른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스쳤다. 설치할 때 원화를 봤다고 하면 민석에게 책임이 갈 수도 있었다. 반대로 이미 복제화였다고 하면 자신이 모르고 걸었다는 잘못만 남는다. 둘 다 본 적 없는 장면을 꾸며야 했다.
“저입니다. 그래서 제가 본 부분과 안 본 부분을 따로 적겠습니다.”
지우는 전화기를 들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도윤은 복도 끝에서 그녀가 신고 담당자에게 그림이 바뀐 것으로 의심된다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당장 범인을 특정하지 않았다. 작업실 출발 사진, 갤러리 입고 사진, 현재 그림의 옆면 사진을 정리해 보내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는 도윤에게 입고 원본을 요청했다.
“제 서명도 같이 보내세요.” 그가 말했다.
“그게 당신한테 불리할 텐데요.”
“빼면 시간만 더 헷갈립니다.”
민석은 손님 연락을 미뤄 달라고 했다. 지우는 듣고도 대답하지 않았다. 도윤은 두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걷는 동안에도 아직 서로를 믿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자료 하나를 가릴 생각은 없었다.
전시실에서 그는 그림을 다시 벽에서 내렸다. 이번에는 지우가 곁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못이나 걸쇠를 건드리지 않고 뒷면을 보니 나무판과 캔버스 사이로 갈색 종이 끝이 삐져나와 있었다. 운송할 때 끼운 완충재라면 일요일 흰 천 속에서도 보았을 법했다. 도윤은 종이를 손대기 전에 사진부터 찍었다.
“원래 이걸로 쌌어요?”
“아니요. 흰 천이었어요.”
그는 걸린 끝만 조심스레 빼냈다. 보랏빛 도장이 종이 한 귀퉁이에 반쯤 남았다. …진 액자. 도윤은 글자만 보고 액자점을 확정하지 않았다. 어디서 나온 포장인지 알아보려면 더 찾아야 했다.
지우가 화면 속 입고 사진을 확대했다. “그때는 이 종이가 없죠?”
“보이지는 않습니다. 뒤쪽 안까지 찍은 사진은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면 아무것도 못 알아내요.”
“반대로 사진에 안 찍힌 걸 없었다고 쓰면, 나중에 진짜가 나와도 믿어 주지 않을 겁니다.”
지우는 입술을 다물었다. 도윤은 그녀에게 말이 거칠었다고 생각했지만 거두지 않았다. 첫날의 ‘빛 때문에’와는 다른 종류의 고집이었다. 둘이 찾아야 하는 것은 자기 말에 유리한 순서가 아니라 실제 그림의 순서였다.
도윤이 종이를 작은 봉투에 넣자 지우가 봉투 앞에 날짜와 나온 위치를 적었다. 둘의 필체가 달랐다. 도윤은 일요일 입고 사진, 월요일 현재 사진, 갈색 종이가 나온 순간의 사진을 번호 없이 나열해 보았다. 이어져야 할 중간 한 장이 비어 있었다.
“이게 범인을 가리키나요?” 지우가 물었다.
“아직은요. 다만 다른 그림이 준비됐을 수 있다는 쪽으로 갑니다.”
그가 다시 그림을 벽에 걸지는 않았다. 민석이 와서 왜 비워 뒀냐고 물으면, 임의로 전시하지 말라는 작가의 말을 들었다고 답할 생각이었다. 도윤은 받침 위에 세운 복제화의 정면을 보았다. 주황빛은 여전히 예뻤다. 아름다워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남의 작품이 될 수는 없었다.
하역장으로 나오는 길에 그는 전시실 문을 한 번 더 잠갔다. 지우가 문 앞에서 기다렸다. “내일 같이 그 액자점에 가 줄 수 있어요?” 그녀가 물었다. 그제야 도윤은 봉투의 도장이 동네 액자점 이름의 끝글자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동네의 액자점은 하나뿐이 아니었다. 그는 아직 이름을 말하지 않고, 먼저 전화번호부에서 위치를 확인했다. “가 보죠. 내일 주문 내역을 직접 물어봅시다.”
지우는 그의 대답에 고맙다고 하지 않았다. 도윤도 원하지 않았다. 자신의 서명이 의심의 중심에 있는 한, 두 사람이 함께 움직이는 것은 신뢰의 표시라기보다 가장 빠른 확인 방법이었다.
그날 도윤은 휴대전화에 ‘원화가 들어온 시점’과 ‘다른 그림을 발견한 시점’을 따로 적었다. 사이의 시간을 자기 기억으로 채워 넣지 않았다. 정확히 모르는 시간이 사건의 핵심일 수 있었다.
그는 지우가 보낸 사진을 따로 저장하고 파일 이름에 원본 시각을 남겼다. 내일 액자점에서 들은 말도 이 사이의 어느 시각에 놓일지 확인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