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아침, 도윤은 약속보다 십 분 먼저 버스 정류장 뒤에 도착했다. 유리문 너머 윤해숙의 액자점에는 크기가 다른 프레임이 벽에 기대어 있었다. 도윤은 액자를 옮기는 사람의 눈으로 먼저 모서리와 운송 끈을 봤다. 그다음에야 창가에 걸린 작은 그림들이 보였다. 누리에서 지우가 한 말이 떠올랐다. 정면과 옆면을 모두 보라는 것.
지우는 남색 셔츠 위에 회색 작업 앞치마를 벗어 접어 들고 왔다. 잠깐 작업실에 들렀다 온 모양이었다. 그녀는 인사 대신 봉투를 내밀었다. “이 종이부터 확인해요.”
해숙은 안경줄을 손가락에 감고 포장 종이를 살폈다. 뒤집고, 펼치고, 도장 부분을 창 쪽으로 들어 올렸다. “우리 집 도장 맞네요. 포장할 때 쓰던 종이예요.”
지우가 바로 물었다. “누가 가져간 건지 알 수 있을까요?”
“뭐가 어디서 나왔는데요?”
“누리 갤러리에 걸린, 제 그림이 아닌 그림 뒤요.”
해숙은 두 사람을 차례로 봤다. 도윤은 지우가 ‘가짜’라 하지 않은 까닭을 짐작했다. 해숙은 의뢰받은 액자를 만들었을 뿐인데, 시작부터 공범처럼 들리게 할 필요가 없었다. 해숙은 작업대 밑에서 얇은 주문 장부를 꺼냈다. 도윤은 장부에 손을 대지 않았다.
“크기부터요. 가로 팔십, 세로 백이요.”
해숙이 페이지를 몇 장 넘겼다. “이 주 전. 오민석 씨. 동일한 규격의 액자.” 그녀가 손톱으로 줄을 짚었다. “전시용 보조 그림이라며 급히 부탁했어요. 기존 것과 똑같은 틀로 맞춰 달라고.”
지우가 장부 앞에 몸을 숙였다. 도윤은 그녀가 날짜를 다시 보는 것을 알았다. 복제화가 월요일 아침에 급히 만들어진 우발적인 대체품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민석이 이 주 전부터 준비했다면 도윤의 밤 서명은 계획의 시작이 아니라 마지막에 이용된 자국에 가까웠다. 그래도 그와 별개로 원화를 언제 빼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 그림은 누가 가져왔어요?” 지우가 물었다.
“오 선생이 직접요. 나는 액자만 맞췄고요.”
해숙은 휴대전화에서 완성한 날의 사진을 찾아 보여 주었다. 같은 코발트 창틀, 짙은 남색 강변, 강물의 주황빛이 화면 안에 있었다. 정면의 구도는 잘 흉내 낸 것이었다. 옆면은 액자와 촬영 각도에 가렸다. 지우는 자기 출발 사진의 정면 부분만 화면에 띄워 나란히 놓았다.
“여기서도 왼쪽이 가렸네요.” 그녀가 말했다.
“그날은 액자 상태만 찍었어요.” 해숙이 대답했다. “작품 진위를 보고 맡은 게 아니라서.”
“그걸 탓하려는 게 아니에요.” 지우는 한 박자 뒤에 말했다. “날짜가 보이도록 주문서 부분을 찍어도 될까요?”
해숙은 이름과 날짜가 있는 줄을 펼쳐 주었다. 대신 자기 가게 이름을 무턱대고 공개하지 말라고 했다. 도윤은 책임을 떠넘기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일의 범위를 밝히는 사람의 목소리라고 들었다. “자료를 확인하는 데만 쓰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해숙은 주문서를 덮지 않고 두 사람을 봤다. “오 선생은 그날 기존 것과 똑같은 규격을 강조했어요. 전시용 보조 그림이라고 했고요. 나는 주문서에 적힌 크기대로 액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림 자체는 제가 심사하는 물건이 아니니까.”
지우가 바로 그 말을 기록하지 않았다. 도윤은 해숙이 지금 기억하는 태도를 범행의 증거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누리의 전시 일정 때문에 액자를 급하게 맞췄을 수도 있었다. 다만 주문 날짜와 규격, 그때 들은 ‘전시용 보조 그림’이라는 설명은 남았다.
“완성 사진 외에 다른 면 사진은 없으세요?” 도윤이 물었다.
“옆은 안 찍었어요. 나는 액자의 네 귀가 맞는지만 봤으니까.”
지우가 휴대전화에서 원화의 옆면 사진을 보여 주려다 손을 멈췄다. “그럼 지금 보여 드리는 게 해숙 선생님 기억을 바꿀 수도 있겠네요. 사진은 안 보여 드릴게요.”
도윤은 그 말에 놀랐다. 그녀는 첫날 자신의 확신을 증명하려고 사진을 계속 들이밀었다. 지금은 누군가의 기억을 자기 사진에 맞춰 끌고 가지 않으려 했다. 해숙은 고개를 끄덕이고 주문 날짜를 다시 짚었다.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이 날짜에 이 규격을 오 선생이 주문했다는 거예요.”
두 사람은 그 문장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 작업대 위에 남은 나무 가루가 해숙의 손끝에 묻었다. 지우는 물티슈를 건네받아 자기 휴대전화에 붙은 가루를 닦았다. 가게 문을 나설 때 해숙이 “그림은 찾으면 꼭 보여 줘요. 이번엔 앞을 보게”라고 말했다. 도윤은 지우가 짧게 고개를 숙이는 것을 봤다.
나오는 길에 지우가 장부 사진을 확대했다. “민석 씨가 미리 만든 그림이네요.”
“그림과 액자를 준비했다는 것까지요. 원화를 어디에 뒀는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아직도 선배처럼 말해요.”
도윤은 그녀가 조금 웃는 것을 봤다. 첫날에는 자신의 ‘빛 때문에’라는 말이 그녀의 귀에 그렇게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녀가 사진을 받아 들고 같이 확인한다. 거리 하나가 줄었을 뿐, 의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갤러리로 돌아가는 길에 도윤은 일요일 설치 사진을 훑었다. 사진 속 전시실의 흰 벽, 하역장의 카트, 윤호의 빨간 운동화가 차례로 지나갔다. 밤 아홉 시 십구 분. 윤호가 큰 크레이트를 카트에 올려 뒷문으로 밀고 가는 사진에서 그의 손이 멈췄다. 정면에서 본 상자는 《한밤의 창》이 들어갈 크기였다.
“윤호예요. 일요일 설치 보조.”
지우가 화면을 끌어다 보았다. 그녀는 입을 열었다가 사진을 더 키웠다. “빈 건지 찬 건지 보이나요?”
“이 각도로는 안 보입니다.”
“전화해 봐요.”
윤호의 전화는 신호만 갔다. 도윤이 설치 근무표를 열어 보니 이번 주 일정에는 그의 이름이 없었다. 지우는 초대장에 적힌 금요일 저녁 일곱 시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기다렸다가 윤호를 다시 만나기에는 시간이 너무 적었다. 그러나 화면에서 운송 카트 하나만 보고 사람을 범인으로 정해 버릴 수도 없었다.
도윤은 민석에게 액자 주문을 물어보려다 메시지를 지웠다. 해숙의 기록은 이미 사진으로 남겼지만, 민석에게 조사 순서를 알려 줄 필요는 없었다. 자신이 경찰도 아니고 남을 몰래 덫에 빠뜨릴 권한도 없다는 점이 불편했다. 그는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기로 했다. 사진의 촬영 시각과 파일 이름을 따로 적고, 주문서 사본을 지우와 공유했다. 지우도 저장한 뒤 엄지손가락을 화면에서 뗐다.
“우리가 이 사진을 보고 윤호를 찾아가면,” 지우가 말했다. “그 애도 우리가 자기를 의심하는 줄 알겠죠.”
“실제로 의심하고 있으니까요.”
“사진을 먼저 보여 주지 말고, 그날 옮긴 물건부터 물어봐요.”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가 작품을 볼 때 작은 차이를 놓치지 않는다면, 그는 물건을 다루는 사람의 순서를 놓치지 않아야 했다. 상자의 크기보다 두께와 접힌 경첩. 사진 속에는 뒤집어 보면 읽힐 다른 면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는 사진을 다시 켜고 손톱으로 화면의 가장자리를 가렸다. 처음에는 큰 네모만 보였다. 두 손가락으로 확대하자 옆판의 얇은 선이 나타났다. 그 선이 접힌 경첩인지 그림자였는지는 여기서 단정할 수 없었다. 윤호에게 직접 물을 이유는 충분했지만, 그를 범인이라 부를 이유는 부족했다. 도윤은 사진 아래에 내용물 확인 전이라고 적었다. 지우가 그 말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갤러리 앞에서는 민석이 금요일 포스터를 유리창 안쪽에 붙이고 있었다. 그가 뒤돌아볼 때 도윤은 주문서 사진을 닫았다. 지우는 아무 말 없이 포스터를 읽었다. 자신의 이름이 가장 큰 글자로 인쇄되어 있었다. 도윤은 어제 받침에 세워 둔 복제화를 떠올렸다. 아직 없는 사람처럼 그 자리를 비워 둘 수는 없었다. 금요일이 되기 전에 실제 원화가 어디 있는지 찾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