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는 사라진 게 아니었다. 화요일 오후, 갤러리 뒤 세탁소 옆에서 배달용 상자를 접고 있었다. 이번 주 누리 근무표에 이름이 없어 형의 가게를 돕고 있었다. 빨간 운동화 한쪽에 투명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도윤에게는 설치 사진에서 발끝만 보였던 사람이 이제 처음으로 얼굴을 드러낸 것 같았다.
“전화 왜 안 받았어?” 그가 물었다.
윤호가 접던 상자를 내려놓았다. “선배한테 세 통, 사장님한테 두 통. 누구 말부터 들어야 되는지 몰랐어요.”
지우는 먼저 그의 일을 물었다. “일요일 밤에 뒷문으로 크레이트 하나 옮겼다고 들었어요. 어디로 가져갔어요?”
윤호는 전시실 안에서 보던 지우와 다른 표정으로 그녀를 봤다. “여기로요. 버릴 포장재를 형 가게 재활용 묶음에 합치려 했거든요. 그런데 담을 게 없어서 빈 채로 접어 들고 왔어요. 월요일에 돌려놓을 생각이었는데 근무표에서 제 이름이 빠졌어요. 사장님 전화까지 오니 그 상자를 들고 갤러리에 들어가기가 겁났고요. 오늘 여기 일 끝나면 반납하려고 했어요.”
“그걸 확인할 수 있어?” 도윤이 물었다.
“선배도 사진 보고 왔죠?”
도윤이 휴대전화를 내밀자 윤호의 턱이 굳었다. 그 순간 도윤은 첫 질문을 잘못 꺼냈다는 걸 알았다. 장부와 사진을 들고 오면 상대가 무조건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기 서명이 들렸을 때 자신도 똑같은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윤호는 세탁소 뒤문을 열었다. 벽에 기대 세운 크레이트가 있었다. 버릴 포장재를 담으려고 누리에서 가져왔으나 실제로 담을 게 없어 접힌 채 형 가게에 보관한 것이었다. 오래된 전시 이름이 뚜껑 안쪽에 희미하게 적혀 있었다. 도윤도 그 이름을 기억했다. 누리에서 몇 번이고 접었다 폈던 물건이었다.
“사진의 상자예요. 여기 경첩 보세요.” 윤호가 옆판을 밀자 크레이트는 판처럼 납작해졌다. “그때도 이렇게 접혀 있었어요. 안에 그림을 넣을 공간 자체가 없었고요.”
도윤은 휴대전화의 사진을 키웠다. 카트 위에서 상자가 커 보인 것은 가로세로 크기 때문이었다. 사진에는 옆선만 보여 당시에도 접혀 있었는지까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는 처음부터 이 물건을 알았으면서, 사진 속 빨간 신발을 본 뒤에는 크기만 보았다.
“이 사진만으로는 그림을 실었다고 단정할 수 없었네요.”
“맞아요.” 윤호가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뭔가 옮겼다는 건 맞지만, 그림은 아니에요.”
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먼저 널 범인처럼 본 건 미안해. 그래도 작품이 사라졌어. 그날 밤이나 새벽에 본 게 있다면 말해 줄 수 있어?”
도윤은 그녀가 자신에게도 했던 질문을 떠올렸다. 사진을 보라는 명령 뒤에 사람의 말이 놓이면, 말은 곧 변명처럼 들린다. 지금 지우는 순서를 바꿨다. 윤호는 벽 쪽으로 접힌 크레이트를 밀고 나서 한참 동안 손을 떼지 않았다.
“월요일 새벽에 사장님이 뒷문을 열었어요. 형이 첫 배달 나갈 때 저도 상자를 실으러 나왔거든요.”
“몇 시쯤?” 도윤이 물었다.
“다섯 시 반 조금 넘어서요. 정확한 건 달력 메모를 봐야 해요.”
“뭘 들고 있었어?”
“회색 천으로 싼 큰 거요. 어깨보다 높았어요. 사장님이 전시실 쪽에서 안쪽 보관실로 밀었어요.”
“그게 그림이었어?”
“몰라요. 천 때문에 안 보였어요.” 윤호는 말을 끝내고 지우를 봤다. “새 진열대인가 했어요. 내가 캐묻다가 다음 일 잘리면 어떡하나 싶었고요. 문을 닫을 때 사장님 표정이 좀 이상하긴 했어요.”
도윤은 크기와 시각, 동선만 머릿속에 적었다. 원화라고 확정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밤 열 시에 자신이 잠근 문을 월요일 새벽에 민석이 열었다는 말은 확인서의 마지막 줄을 흔들었다. ‘마지막 확인’은 마지막 접근과 다른 말이었다.
갤러리로 돌아가는 길에 지우가 말했다. “윤호 사진 보고 너무 빨리 결론 냈어요. 당신에게도.”
“아직 서명한 건 저예요.”
“그럼 서명 다음에 누가 문을 열었는지도 같이 봐요.”
입구에서 민석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두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묻지 않고 도윤에게 손을 내밀었다. “출입 카드 돌려주세요. 경찰까지 부른 상황에 직원이 마음대로 들락거리면 곤란합니다.”
도윤은 카드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오래 쓰며 끝에 생긴 하얀 흠집이 보였다. 그는 카드만 건넸다. 자신이 아는 비밀번호나 다른 열쇠를 떠올리지 않았다. 갤러리가 잠긴 뒤 몰래 들어가면 지우의 신고 자료까지 불리해질 수 있었다.
민석이 말했다. “전시 준비가 급한데 윤호한테까지 물었습니까? 젊은 직원 일자리 망치고 싶은 거예요?”
“우리가 그 애를 몰아세운 건 잘못했어요.” 지우가 말했다. “그래서 직접 사과했습니다. 제가 묻는 건 제 그림이에요.”
민석은 그 말을 답하지 않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도윤의 손은 카드가 있던 빈 주머니에 오래 머물렀다. 그는 누리에서 일하는 사람이었지만 이제 전시실 안의 어느 문도 스스로 열 수 없었다. 첫날 지우가 그를 믿지 않은 것보다 더 구체적인 거리였다.
그날 저녁 윤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월요일 05:42쯤. 달력에 적어 둔 형의 첫 배달 출발 메모를 보고 떠올린 시간이라고 했다. 도윤은 ‘정확한 시계 기록 아님’이라고 자료 옆에 적었다. 민석의 출입을 본 장소도 다시 물어 확인했다. 윤호는 뒤에서 보이는 하역장 문이라고 답했다.
“시간이 틀리면 어떡해요?” 지우가 메모를 보며 물었다.
“몇 분은 틀릴 수 있죠. 그게 목격 자체를 없애지는 않아요.”
“그런 데까지 구분하는 사람이 왜 내 그림 옆면은 안 봤을까요?”
도윤은 잠깐 웃었다. “내가 내 일의 모양을 너무 좁게 정했나 봐요.”
지우는 이전 신고 담당자에게 그 자리에서 전화를 걸었다. 도윤은 옆에서 들으며, 윤호가 본 것과 못 본 것을 지우가 어떻게 나누어 전달하는지 확인했다. 민석이 월요일 새벽 큰 물건을 보관실 쪽으로 옮겼다는 목격. 천에 싸여 있어 작품인지는 알 수 없음. 시간은 대략 다섯 시 사십이 분. 담당자에게 보관실 확인을 요청했다. 수요일에 함께 확인하자는 답이 왔다.
도윤은 통화가 끝난 뒤 윤호에게 짧게 메시지를 보냈다. 네가 본 범위대로 전달했어. 작품이라고 단정하지 않았어. 윤호의 답은 한동안 오지 않았다. 그는 휴대전화를 자꾸 들여다보다 주머니에 넣었다. 사과를 들은 사람이 바로 안심할 거라고 기대하는 것도 자기 편한 생각이었다.
윤호의 빨간 운동화가 사진 속에서 다시 선명해졌다. 도윤은 그 사진을 삭제하지 않았다. 잘못 읽은 근거도 보관해야 나중에 같은 실수를 설명할 수 있었다.
전화를 끊고 지우가 말했다. “우리 둘이 오늘 밤 들어가 보면 빠를 텐데.”
“저는 카드가 없어요. 당신도 허락받은 적 없고요.”
“알아요. 답답해서 말한 거예요.”
도윤은 갤러리의 불이 꺼지는 것을 보았다. 답답함만으로 잠긴 문을 열 수는 없었다. 내일 보관실이 비어 있다면 또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가 손에 가진 것은 들어갈 수 없는 방을 가리키는 사진과 사람들의 말뿐이었다.
도윤은 작업실로 돌아가는 지우와 갈림길까지 걸었다. 그녀가 먼저 물었다. “아침에 방이 비어 있으면 윤호 말을 못 믿게 되나요?”
“아뇨. 그 애가 본 건 월요일 새벽이고, 내일은 수요일이잖아요.”
“그럼 지금 알려진 사실을 하나씩 남겨요. 빈 방도 빈 방이라고.”
도윤은 그녀가 오늘 낮부터 같은 말을 여러 번 듣고도 포기하지 않은 까닭을 조금 알 것 같았다. 작품을 알아보는 사람의 고집은,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하지 않는 태도와 붙어 있었다. 그는 지우의 등이 골목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서 있지 않았다. 자기 쪽에도 정리할 기록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