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아침, 누리 보관실 앞에서 민석은 열쇠를 한 번 떨어뜨렸다. 도윤은 그 작은 소리를 크게 들었다. 신고 담당자가 문 앞에 있고 지우가 바로 옆에 섰다. 도윤의 손에는 출입 카드가 없었다. 어제까지 이 문을 지나며 일했지만 오늘은 다른 사람이 문을 열어 주기만 기다려야 했다.
보관실 안에는 회색 천이 덮인 접이식 진열대와 빈 액자 몇 개가 있었다. 윤호가 본 어깨보다 큰 물건이 진열대였을 수도 있었다. 도윤은 천을 걷은 뒤 접힌 다리와 바퀴를 살폈다. 원화는 없었다. 민석은 보라는 듯 양팔을 벌렸다.
“이걸 보고 누가 도둑이라고 했습니까?”
“저는 여기 그림이 있었는지 확인하자고 했어요.” 지우가 말했다. “있다고 단정하지 않았고요.”
담당자는 방이 비어 있는 현재 상태를 기록했다. 윤호의 목격을 지우가 다시 설명했고, 도윤은 자신의 일요일 밤 설치와 월요일 확인서 시각을 말했다. 도윤이 원하는 답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비어 있음’도 사실이었다. 그는 억지로 진열대 뒤에 손을 넣거나 잠긴 사무실 쪽으로 더 들어가지 않았다. 민석이 그들을 밖으로 안내하자 지우는 문턱 앞에서 한 번 돌아봤다.
“여기에 없다고 해서 제 그림이 돌아온 건 아니죠?” 그녀가 담당자에게 물었다.
“기존 자료와 새로 나온 말은 계속 확인합니다.”
도윤은 더 구체적인 약속을 듣고 싶었지만, 담당자가 모르는 위치를 답하게 할 수는 없었다. 지우도 그걸 아는지 더 묻지 않았다. 둘은 민석의 시선 아래 전시실을 빠져나왔다.
밖의 유리창에는 금요일 개막 포스터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지우의 이름과 《한밤의 창》이 큰 글자로 나란히 적혔다. 그 밑에서 도윤은 대체 그림이 다시 벽에 걸린 것을 봤다. 누가 걸었는지는 몰랐지만 민석이 전시를 멈출 생각이 없다는 건 분명했다.
지우의 휴대전화에 전날 밤 민석이 보낸 문자가 남아 있었다. 일정대로 여세요. 작품이 진짜인지 사람들은 모릅니다. 그녀는 그 문자를 화면에 띄워 도윤에게 보여 주었다. “어젯밤 잠을 못 잤어요. 그래서 아침에 일찍 왔는데, 여기 걸려 있는 걸 보니까 더 모르겠어요.”
도윤은 길 건너 편의점에서 종이컵 두 개를 사 왔다. 지우는 손에 받지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은 모를까요? 저 그림이 내 것이 아닌 거.”
“옆면까지 보는 사람은 적을 겁니다.”
“그럼 그냥 열어요? 당신도 일자리로 돌아가고.”
도윤은 컵을 벤치에 놓았다. 어제까지라면 가게의 사정과 직원 일자리를 먼저 셈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셈에는 그림을 그린 사람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이 그린 작품을 내놓는 비용이 빠져 있었다. “제 일 때문에 그림을 바꾸는 건 더 이상하죠.”
지우는 자리에 앉아 전시 계정을 열었다. 새 글 입력창은 흰 벽처럼 텅 비어 있었다. 그녀가 몇 줄을 썼다가 지웠다. 도난이라는 단어를 넣었다가 뺐고, 민석이라는 이름도 쓰지 않았다. 도윤은 곁에서 문장을 고쳐 주고 싶지 않았다. 어떤 사실이 확인됐는지 알려 달라고 하면 답할 수 있었지만, 이 글에 달릴 이름은 지우의 것이었다.
이번 금요일 누리 갤러리 개막은 취소합니다. 제 작품의 원화가 전시장에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확인된 사실만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문장이 남았다. 지우는 게시 버튼 위에서 손을 멈췄다. “엄마가 이거 보고 먼저 전화하겠죠. 포스터 만든 친구는 야근까지 했는데.”
도윤은 컵의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마음이 돌아서도록 재촉할 수도 있었고, 자기가 눌러 주겠다고 나설 수도 있었다. 둘 다 지우의 손해를 대신 지는 행동은 아니었다.
“제가 누를게요.” 지우가 말했다.
그녀가 버튼을 눌렀다. 화면의 작은 회전 표시가 사라지자 게시물이 올라왔다. 도윤은 그녀의 어깨가 한 번 내려가는 것을 봤다. 손실은 그 순간부터 실제가 되었을 것이다. 초대받은 사람이 물어볼 것이고, 작품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야 할 것이다.
문이 열리며 민석이 나왔다. “가짜라고는 쓰지 않았네요. 아직 되돌릴 수 있어요.”
“돌아오면 진짜를 걸 겁니다.”
“한 작가 때문에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피해를 봐요.”
“제 그림을 바꾼 사람 때문에요.”
민석의 시선이 도윤에게 옮겨왔다. “일 끝났으면 여기 서 있지 마세요.”
도윤은 대답 대신 휴대전화를 꺼 메모 화면을 열었다. 민석이 어젯밤 보낸 문자를 지우가 보여 준 뒤부터, 말이 오가는 순간을 사실로 남기려는 버릇이 생겼다. 녹음이나 겁을 주려는 제스처가 아니라 듣는 대로 문장을 적기 위해서였다.
“보조 그림은 내가 그렸어요.” 민석이 낮게 말했다. “임시로 걸면 아무 일 없을 거였죠. 전시가 취소되면 밀린 갤러리 비용도 못 막습니다.”
도윤은 고개를 들었다. 지우는 문장을 듣고도 금세 반격하지 못했다. 민석이 직접 그렸다고 인정한 그림이 바로 뒤 벽에 있었다. 도윤은 보조 그림은 내가 그렸다와 비용을 못 막는다를 나누어 적었다. 하나는 대체 그림의 제작자에 대한 말이고, 다른 하나는 민석이 드러낸 압박이었다. 원화의 위치는 둘 중 어디에도 없었다.
“원화를 어디에 뒀어요?” 지우가 물었다.
“두 분은 갤러리가 문 닫아도 되나 보네요.”
“제 그림으로 빚을 갚으면 안 되죠.”
민석은 더 말하지 않았다. 문이 닫힌 뒤 도윤이 지우에게 메모 화면을 보여 주었다. “제가 들은 문장은 이거예요. 빠진 말 있습니까?”
“없어요. 담당자한테 전하죠.”
지우는 이전 신고 건에 다시 전화했다. 아침 보관실 확인에서 원화를 못 찾았고, 민석이 전시장 그림을 자신이 만들었다고 말했다고 전달했다. 도윤은 그가 쓴 문장만 화면으로 보여 주었다. 지우는 잠긴 사무실과 하역장 쪽도 확인이 필요한지 물었다. 담당자는 새 진술을 기록하고 살펴보겠다고 했다. 도윤은 그 말이 당장 문을 열어 준다는 약속은 아니라고 이해했다.
길 건너로 물러나자 윤호에게서 사진이 왔다. 누리의 공용 설치 대화방에 올라온 운송표였다. 금요일 06:00 / 뒷문 / 대형 작품 1점. 담당에는 민석 이름이 적혔다. 도윤은 사진의 시각을 확인한 뒤 지우에게 보냈다.
“저녁 개막은 취소됐는데, 아침 운송은 그대로네요.”
“제 그림일까요?”
“대형 작품이라는 말만으로는 몰라요.”
그때 뒷문이 열렸다. 민석이 접혀 있던 크레이트를 세우고 모서리에 은색 별 모양 스티커를 붙였다. 도윤은 그 표식을 알아봤다. 누리 소유 운송 물건에 늘 붙이는 표시였다. 지우가 숨을 크게 들이쉬는 소리가 들렸다.
“저 안에 있으면요?”
“지금은 빈지 찬지도 안 보입니다. 누리 상자라는 것만 알아요.”
민석이 문을 닫았다. 지우는 한동안 은색 별이 붙었던 자리를 바라봤다. 그녀는 가방에서 일요일 출발 사진을 꺼냈다. 원화를 싼 흰 천에는 은색 별이 없었다. 별이 새로 생겼다는 사실은 그 상자에 자기 그림이 있다는 뜻이 아니었다.
도윤은 다시 포스터의 금요일 저녁 일곱 시를 봤다. 지우는 화면의 운송표에 적힌 새벽 여섯 시를 보고 있었다. 예정대로라면 전시실이 열리기 전에 어떤 그림 한 점이 이 골목을 나가게 된다.
지우는 게시물에 달리기 시작한 답장을 잠깐 확인했다. 누군가는 언제 다시 여는지만 물었고, 누군가는 무슨 일이냐고 캐물었다. 지우는 어느 댓글에도 범인의 이름을 쓰지 않았다. 도윤은 그녀가 조용한 전시를 포기한 대신 더 시끄러운 하루를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때 실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