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카리온

파란 창의 행방 · 소설

6화 · 남은 자리

목요일 낮, 지우의 작업실에는 물감 냄새보다 종이 냄새가 진했다. 그녀가 책상 위에 출력해 둔 사진을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도윤은 의자에 앉기 전에 손부터 씻었다. 일요일에는 이곳에서 그림을 받아 운송했다. 오늘은 그림 대신 그날의 사진만 있었다.

첫 사진은 출발 직전의 《한밤의 창》이었다. 왼쪽 옆면 아래 연녹색 밑칠이 보였다. 둘째 사진은 흰 천으로 싼 그림과 모서리에 지우가 꿰맨 붉은 실. 셋째는 누리 하역장 입고 사진이었다. 카트 오른쪽 바퀴와 뒷문 표지, 같은 붉은 실이 한꺼번에 찍혀 있었다. 실제 흰 천은 원화와 함께 갤러리로 갔고 작업실에 돌아온 적이 없었다. 지우는 사진을 가리키며 그 사실부터 확인했다.

“어제 그 상자에 붙은 별이 이 천이랑 이어지는 건 아니죠?”

“누리 크레이트 표식이에요. 천이 어디 있는지와는 별개입니다.”

지우가 사진 사이에 손바닥을 올려놓았다. “그러면 우리가 확실히 아는 건 세 장뿐이네요.”

“원화가 여기서 떠났고, 누리에 들어왔고, 지금 전시장에는 없다는 것.”

“금요일에 누리에서 나가는 큰 물건 하나가 있다는 것도요.”

“네. 그게 원화인지는 아직.”

도윤은 스스로도 같은 말을 여러 번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지우가 모르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눈앞의 자료와 바라는 결론 사이를 넘지 않으려고 했다. 바뀐 작품을 처음 봤을 때 ‘빛 때문’이라고 설명해 버린 자신의 한 문장이 아직도 지우의 눈에 남아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더 이상 편한 설명을 먼저 내고 싶지 않았다.

지우가 일요일 작업실의 위치를 가리켰다. “내가 여기 세워 놨어요. 당신이 천째 들고 나간 건 저 문이고.”

도윤은 그날 두 사람이 어떻게 말을 주고받았는지 떠올렸다. 일정을 확인했고, 천의 붉은 실이 풀리지 않는지만 물었다. 작품 이름을 말했지만 그림 안의 강물은 묻지 않았다. “그날 저녁에는 제가 원화까지 운반한 게 맞아요.”

“나도 당신이 지금 사진을 숨기지 않는다는 건 알아요.”

그 말이 믿음의 선언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도윤에게는 오히려 정확했다. 지우는 그가 한 행동을 보고 한 문장만 보탰다. 그가 원하던 것도 그런 종류의 신뢰였다.

둘은 하역장으로 통하는 공개 골목을 걸었다. 도윤의 카드는 회수된 상태여서 누리 안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편의점과 세탁소 사이 길은 차 한 대가 겨우 멈출 폭이었다. 문턱 앞에는 작은 경사판이 있고, 도윤이 알던 닳은 바퀴라면 여기서 한 번 소리를 낼 것이다. 그가 바닥을 내려다보자 지우가 말했다.

“여기에 서 있으면 그림이 지나가는 건 볼 수 있겠네요.”

“포장되어 있으면 어떤 그림인지는 못 봅니다.”

“그럼 가까이서 보게 해 달라고 물어야죠. 내 그림이면.”

도윤은 그 문장을 고치지 않았다. 소유자인 지우가 확인을 요청하는 것이 첫 행동이어야 했다. 자신은 차량을 막는 사람이 아니라, 자료와 현장 사이를 연결해 시간을 버는 사람이다.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두 사람은 보낼 자료를 정리했다. 액자 주문서에는 민석의 이름과 날짜, 규격이 있었다. 윤호의 목격에는 대략적인 시각과 ‘천에 싸여 내용물은 보지 못함’이라는 제한을 붙였다. 운송표에는 대형 작품 1점이라고 적힌 부분만 표시했다. 은색 별 사진의 설명은 지우가 직접 입력했다. 누리 크레이트 표식. 내용물 미확인.

“확신이 없는 말만 적는 것 같네요.” 지우가 말했다.

“확신이 있는 부분이 어디인지 보이잖아요.”

지우가 신고 담당자에게 이전 건을 말하고 자료를 추가로 보냈다. 담당자는 실제 차량이 오면 그때 다시 연락해 달라고 했다. 도윤은 기대하는 말을 들은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현장에서 어떤 대응이 가능할지는 그 순간에 확인해야 했다.

그는 메모장에 금요일 아침 자신이 할 일을 적었다. 공개된 길에 있기. 차량과 크레이트의 도착 시각 기록하기. 지우의 작품 확인 요청을 뒷받침하기. 현재 보이는 것과 사진을 비교하기. 그는 ‘차를 붙잡는다’는 말을 쓰지 않았다. 작은 골목에서 사람을 밀치는 순간 자료의 순서가 모두 뒤집힐 수 있었다.

저녁이 되자 민석의 차가 골목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은 편의점 창가에서 그 차를 봤다. 유리에 누리 간판이 뒤집혀 비쳤다. 지우가 컵 뚜껑을 누르며 말했다. “첫날엔 당신이 그림을 아예 보지 않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거의 맞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왜 이래요? 서명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

도윤은 잠시 답을 골랐다. 처음엔 그 서명 하나로 모든 일이 자기 잘못이 될까 봐 움직였다. 지우의 사진 속 작은 녹색을 본 뒤에는 무엇을 잘못 보았는지 알게 됐다. 잃어버린 그림은 자신의 직업을 설명하는 종이 한 장보다 오래 남을 것이었다.

“처음엔 제 서명이 걸렸으니까요. 지금은 그 그림의 옆면을 봤으니까요. 옮겨야 할 물건으로만 보면 또 놓칠 것 같아서.”

지우는 뚜껑을 눌렀던 손을 뗐다. “나도 사진 한 장으로 윤호를 판단했어요. 당신도요.”

도윤은 그녀를 봤다. 사과는 이미 들었다. 지금 듣는 것은 그 뒤에도 같이 볼 수 있느냐는 말 같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둘 사이에 남아 있던 의심을 낭만적인 대사 하나로 지울 생각은 없었다.

밤 열한 시에 윤호의 메시지가 왔다. 누리 공용 설치 대화방에 작품 인수 시간을 금요일 다섯 시 반으로 바꾼다는 공지가 올라왔다고 했다. 사진으로 받은 기존 운송표는 여섯 시였다. 도윤은 두 시각의 출처를 따로 적고 다시 확인했다. 민석이 올린 공지에는 시간을 앞당긴 이유가 없었다.

“여섯 시에 맞춰 가면 이미 늦겠네요.” 지우가 일어섰다.

“네. 먼저 가 있어야 해요.”

지우는 작업실 의자에 내일 입을 남색 셔츠를 걸어 두었다. 도윤은 하역장 문 사진을 다시 봤다. 내일 그 안에서 나오는 물건이 원화가 아니면 그들의 추측은 틀린다. 원화라면 지우가 자기 이름으로 그렸다고 말할 수 있는 마지막 면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

그는 윤호에게 감사하다고 답하고 더 일찍 나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미 한 번 빨간 운동화만 보고 그를 의심의 중심에 세웠다. 이번 새벽에는 그를 다시 골목에 세우지 않을 생각이었다. 도윤은 다섯 시를 알람에 맞췄다가 지웠다. 걸어서 골목에 닿을 시간을 계산하니 네 시 사십 분이 맞았다.

“몇 시에 나올 거예요?” 지우가 물었다.

“다섯 시 이십 분 전에 골목에 있을 겁니다. 차가 더 일찍 오면 전화할게요.”

“나도 그 전에 갈게요. 사진은 내가 들고 있을게요.”

둘은 서로의 번호를 다시 확인했다. 금요일 새벽에 할 일은 간단해 보였다. 그러나 도윤은 실제 크레이트가 앞에 오면 손이 먼저 움직일까 봐 걱정했다. 일을 하던 사람의 버릇으로 포장을 풀거나 카트를 끌면, 지우가 자기 그림이라고 말할 기회를 빼앗을 수 있었다. 그는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잠시 앉았다. 내일은 확인의 순서를 지우에게 넘겨야 했다.

지우는 작업실 문턱에서 흰 천이 있던 빈 자리를 가리켰다. 일요일에는 거기에 원화가 세워져 있었다. 지금은 물감 묻은 받침만 남았다. 도윤은 그 빈 모양을 봤다. 그림이 돌아오면 같은 자리에 놓을지, 다른 벽에 걸지 결정할 사람도 지우였다.

그는 다음 날 사진을 몇 번이나 확대하더라도 눈앞의 캔버스를 보지 못하면 같은 자리에 머문다는 걸 알았다. 지우가 하려는 확인은 바로 그 마지막 빈칸을 채우는 일이었다.

6화 · 남은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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