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카리온

두 번째 문 · 소설

2화 · 도망친 자리

다음 날 장터 작업장에서 누군가 루엔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제 큰일 날 뻔했다며. 네가 사람 불러서 살렸다지?”

곡물 자루가 어깨에 얹히기 직전이었다. 루엔은 자루를 받아 들었다. 무게를 핑계로 돌아서면 됐다. 그 말이 입에서 입으로 옮겨가면 흑송 폐광에서 도망친 사람은 잠깐 겁을 먹은 뒤 재빨리 구조를 청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는 자루를 다시 내려놓았다.

“제가 버리고 나왔습니다.”

기름칠하던 바퀴가 멎었다. 루엔은 일손들 얼굴 대신 바닥에 쌓인 곡물 낱알을 보았다.

“세라의 다리가 목재에 끼었습니다. 들어 달라고 했는데 제가 도망쳤어요. 하겐 선생님이 데려왔습니다.”

말하고 나니 어제보다 숨이 찼다. 어깨를 두드린 손이 떨어졌다. 맞은편에서 짐을 묶던 사람이 그를 쳐다보았다. 루엔은 그 시선을 다 받지 못하고 자루를 들었다. 아무도 그에게 길을 비켜 주지 않았다. 그는 늘 하던 좁은 통로로 몸을 돌려 걸었다.

첫 자루를 내려놓고 돌아왔을 때에도 작업장의 말소리는 낮았다. 루엔은 두 번째 자루 밑으로 손을 넣었다. 하루가 끝나면 다른 장터로 갈 수도 있었다. 그는 내일 나를 몫을 물었다. 작업장이 조용해졌다가, 누군가 손가락으로 안쪽 더미를 가리켰다.

품삯은 해가 기울 무렵 받았다. 동전 일곱 닢 중 다섯 닢을 다른 주머니에 옮겼다. 새 지팡이 값으로 모았던 동전도 보탰다. 의원의 문 앞에서 세 번 손을 들었다 내린 뒤, 네 번째에 두드렸다.

세라는 침상에 앉아 있었다. 왼쪽 종아리에는 두꺼운 붕대가 감겨 있었다. 그녀는 창을 가져왔느냐고 물었다. 루엔은 벽에 기대 세웠다. 창끝은 닦았지만 자루의 긁힌 자국은 남아 있었다.

“네가 혼자 빠져나올 줄 알았다고 말하려 했어.”

루엔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면서도 혀가 잘 움직이지 않았다.

“무서워서 나왔어. 널 봤고, 네 말을 들었는데.”

세라는 침상 가장자리를 쥐었다. 손마디가 희어졌다.

“네 부츠 소리도 들렸어.”

그는 더듬어 동전 주머니를 꺼냈다. 의원이 약을 갈던 탁자에 놓았다.

“치료에 써 줘. 앞으로 받는 품삯에서도 가져올게.”

“그걸 주면 내가 괜찮다고 말할까?”

“그 말은 안 해도 돼.”

루엔은 주머니를 조금 더 탁자 안쪽으로 밀었다. 동전이 서로 부딪쳤다. 세라는 그것을 보다가 얼굴을 돌렸다. 나가 달라는 말은 조용했다. 그는 문을 닫을 때 창이 넘어지지 않도록 한 번 확인했다. 그 작은 확인 때문에 자신을 나은 사람으로 여길까 봐 싫었다. 그래도 창을 바로 세워 두었다.

하겐은 폐광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봉쇄 안내판을 깎고 있었다. 루엔이 다가가자 칼끝을 멈췄다. 넓은 어깨 위로 흙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제가 다시 들어갈 수 있습니까?”

“오늘 들어가면 또 뛰어나오겠지.”

루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쉽게 부정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입을 열자 어제 철문을 향해 달린 다리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가르쳐 주십시오.”

하겐은 판자를 무릎에서 내렸다.

“무엇을?”

“안 도망치는 법을.”

“줄에 묶어 두면 된다. 그걸 배워서 마법사가 되겠느냐?”

말끝에 조롱이 없어서 더 아팠다. 루엔은 오른쪽 손목의 황토색 천띠를 만졌다. 짐꾼으로 받은 첫 품삯으로 샀던 것이었다. 배낭끈에 쓸리던 피부를 가릴 때부터, 지팡이를 쥘 때까지 늘 거기 있었다.

“저는 최고의 토벌 마법사가 되고 싶습니다.”

이번 말은 하겐의 눈을 보며 했다. 볼이 달아올랐다. 폐광 문 앞에 주저앉았던 사람이 입에 올리기에 너무 큰 말이었다.

“짐만 나르다가 늙고 싶지 않아서 주문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주문 두 개를 외우면 다른 사람이 되는 줄 알았어요. 저는 그대로였습니다. 지금 가진 걸 제대로 쓰는 법부터 배우겠습니다.”

하겐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판자의 거친 모서리를 엄지로 쓸었다.

“새벽에 흙마당으로 와라. 품삯 벌 일도 계속하고.”

루엔의 고개가 들렸다.

“먼저 네 손으로 방벽을 깨 보자. 언제 깨지는지 알아야 한다.”

그날 밤 루엔은 짧은 나무 지팡이를 침상 곁에 놓았다. 잠이 들려 할 때마다 세라의 부름이 들렸다. 그는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었다. 새벽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손바닥을 폈다가, 숨이 또 멎은 것을 깨닫고 천천히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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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 도망친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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