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방벽이 사라진 자리에 나무추가 한 번 더 흔들렸다.
루엔은 빈 손을 내렸다. 첫 토벌을 마친 지 열흘, 고정천을 풀고 허락받은 연습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세라는 벤치에서 추의 흔들림을 지켜보았다. 붕대 감은 다리는 앞으로 뻗어 두었다.
“한 번 더 하면 방금보다 잘될 것 같은데.”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하겐이 추와 루엔 사이에 섰다. 접힌 진찰표가 손에 들려 있었다.
“오늘 허락은 다 썼다. 의원부터 가자.”
의원에서는 오른팔을 받침에 얹었다. 의원이 천천히 손목을 돌리자 팔 안쪽 끝에서 줄을 당기는 듯한 느낌이 났다. 루엔이 입술을 다물자 의원이 움직임을 멈췄다.
“어디부터?”
“끝까지 돌리면 당겨요.”
“그럼 끝까지 돌리지 않는 거예요. 가벼운 손가락 움직임만. 들거나 비트는 건 아직 안 돼요.”
창밖으로 자루를 나르는 인부들이 지나갔다. 둘이 함께 든 자루도 루엔이 예전에 맡던 것보다 작았다. 그는 창에서 눈을 떼고 물었다.
“장부 쓰는 일은요?”
“왼손으로, 중간에 쉬면서요. 오른팔이 욱신하면 그날 일은 멈춰요.”
루엔은 그 두 조건을 하겐보다 먼저 되풀이했다.
장터 주인은 자루 대신 얇은 장부를 내주었다. 등받이 있는 의자와 팔을 받칠 천도 가져왔다.
“묶음 수만 맞춰 주게. 자루는 내가 옮기고.”
왼손으로 쓴 숫자는 줄 안에서 자꾸 넘어졌다. 루엔은 가장 삐뚤어진 셋을 손가락으로 가렸다. 주인은 그 손가락을 치우고 자루 쪽을 보았다.
“글씨가 누워도 자루 수만 똑바로 서면 되지.”
루엔은 작은 돌을 세 개씩 모았다. 주인이 자루 셋을 수레에 올리면 돌 한 묶음을 빈 그릇으로 옮겼다. 펜을 계속 쥐는 것보다 손이 덜 피곤했다. 오전 장부가 맞아떨어지자 점심 뒤의 일도 쉽게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세라가 얇은 영수증 묶음을 들고 온 것은 그때였다.
“약값 영수증, 날짜만 묶어 줄래? 난 정찰 교육표 받아 올게. 내일 줘도 돼.”
“오늘 다 해 둘게. 날짜만 옮겨 적으면 되잖아.”
“묶기만 해도 돼. 쉬는 시간까지 없애진 말고.”
그녀는 영수증을 장터 장부에서 떨어진 곳에 놓았다. 루엔은 세라가 떠난 뒤 새 종이를 폈다. 날짜를 옮기면 금액도 옆에 적어야 보기 편했다. 금액을 적으니 약 이름도 빠뜨릴 수 없었다. 물컵 옆으로 종이가 한 장씩 늘었다.
늦은 햇빛이 장부 가운데로 옮겨 왔다. 작은 돌 한 묶음이 빈 그릇에 있었는지 아직 옮기기 전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루엔은 자루를 다시 보고 줄을 하나 더 그었다. 그 순간 팔꿈치 곁의 영수증이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오른손이 먼저 나갔다.
종이는 잡히지 않았다. 팔 안에서 짧고 날카로운 통증이 올라왔다. 루엔은 손을 거두고 숨을 들이마셨다. 바닥의 영수증은 그대로였다. 종이 한 장에 무게가 얼마나 된다고 이러는지 화가 났다.
“여기 같은 자루를 두 번 셌어.”
마감 장부를 보던 직원이 줄을 짚었다. 루엔은 팔을 다시 받치고 펜을 찾았다.
“지금 다시 맞추면…….”
돌아온 세라가 바닥의 영수증을 주웠다. 건강한 다리에 체중을 두고 손을 뻗었다. 품에는 정찰 교육표가 끼워져 있었다.
“내 건 날짜만 부탁했어. 전부 다시 쓸 필요 없어.”
루엔의 새 종이에는 아직 두 날짜가 남아 있었다. 그 옆 장터 장부에는 자루 셋이 더 있었다. 세라는 자기 영수증을 모았고, 주인은 직원에게 수레를 다시 확인해 달라고 했다. 누구도 루엔에게 펜을 쥐여 주지 않았다.
루엔이 먼저 펜을 내려놓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팔이 아파요.”
주인이 장부를 자기 쪽으로 돌렸다.
“이 줄은 내가 마저 맞추지. 내일은 새 줄부터.”
“내 건 내가 마저 묶을게.”
세라가 덧붙였다. 그녀는 날짜가 보이게 종이를 뒤집어 끈으로 묶었다. 루엔이 한참 쓰던 것보다 빨리 끝났다.
주인은 맞춰 놓은 분량만큼 동전을 주었다. 루엔은 약값 주머니와 저녁거리 옆에 하나씩 놓았다. 적은 품삯이었지만 오늘 일을 전부 못 했다는 이유로 사라지지는 않았다.
닫힌 가게 밖에서 세라와 나란히 앉아 저녁을 먹었다.
“장부 일이 자루보다 만만한 줄 알았는데.”
“자루는 적어도 더하기를 안 하잖아.”
루엔은 웃다가 팔을 조금 고쳐 받쳤다.
“내일은 숫자랑 덜 싸울게.”
펜을 돌려놓으려고 도구함을 열었을 때 낡은 천 아래로 지팡이가 보였다. 끝의 금은 토벌에서 생긴 그대로였다. 루엔은 천만 걷고 지팡이를 들어 올리지 않았다.
“너도 쉬는 중이었구나.”
뚜껑을 닫기 전, 어디까지 금이 갔는지 눈으로 한 번 더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