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카리온

지도에 없는 일곱째 길 · 소설

2. 하얀 길

북쪽 길은 처음 한 시간 동안 평범했다. 수레바퀴 자국이 마른 흙에 남았고, 길가에는 어느 마을로 가는지 적힌 나무 표지가 섰다. 정오가 지나자 표지의 글씨가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걷지 마.”

시온이 낮게 말했다. 일행의 맨 뒤에서 기다란 총을 들고 있었기에 남들보다 먼저 하얀 안개 속의 움직임을 봤다. 표지판의 그림자가 길바닥에서 떨어져 나왔다. 네 발로 선 것은 짐승 같았지만, 어깨에는 화살표와 마을 이름이 뒤엉킨 딱딱한 판이 돋아 있었다.

도윤이 앞으로 나갔다. 주먹을 쥐자 손목의 첫 전직 인장이 주황빛으로 달아올랐다.

“파워.”

그가 짧은 칼을 세 번 연달아 내리쳤다. 첫 칼이 판을 울렸고, 둘째가 이음새를 벌렸다. 셋째가 닿을 때 금이 갔다. 도윤은 웃으려다가 숨을 들이켜지 못하고 무릎을 굽혔다. 넷째 공격은 없었다.

이든의 총이 두 번 울렸다. 작고 빠른 탄환은 금 간 판을 깨지는 못했으나 짐승의 앞발을 길 가장자리에 붙들어 두었다. 적이 고개를 이든 쪽으로 돌리자 모아가 방패를 비스듬히 세웠다. 이든의 앞이 아니라, 도윤과 이든 사이였다. 짐승이 어느 쪽을 향하든 방패 끝에 걸리도록.

“단, 지금!”

단이 안개를 밟고 뛰었다. 발꿈치가 금 간 판의 아래를 걷어 올렸다. 짐승의 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라온은 그때 칼을 뽑았다. 누구보다 늦었지만 누구보다 가까웠다. 노리기수는 틈을 본 다음 움직인다. 발끝을 고정하고, 금의 시작과 끝을 눈으로 이었다. 하나. 둘.

안개 속에서 또 다른 발소리가 났다.

라온이 시선을 돌린 순간 표지짐승이 몸을 비틀었다. 노림점이 사라졌다. 칼끝은 딱딱한 판을 스쳤고 손목에 통증이 번졌다. 모아가 앞으로 몸을 던지지 않았다면 라온은 그대로 물렸을 것이다.

“잠깐을 맡기라며.” 모아가 이를 악물었다. “그럼 진짜로 맡겨.”

시온은 이미 길의 반대쪽을 겨누고 있었다. 라온과 같은 수로 숨을 세었다. 하나. 둘. 그러나 시온이 본 곳은 발 앞의 금이 아니라 짐승의 뒤편, 안개가 몸에 붙어 있는 가느다란 선이었다. 총성이 멀리서 울렸고 그 선이 한 번 흔들렸다.

“가까운 건 네 거야.” 시온이 말했다. “먼 건 내가 볼게.”

그 말이 끝나기 전에 해나가 짐승에게 손을 뻗었다. 치료수의 인장은 희미한 녹색이었다. 쓰러진 사람을 살릴 때와 같은 빛이었다.

“절단.”

빛이 가는 선을 따라 똑바로 지나갔다. 두꺼운 판은 그대로였지만, 그 안쪽의 생기가 정확히 한 겹 잘려 나갔다. 늘 같은 깊이의 상처였다. 더 세게 할 수도, 운 좋게 두 배로 낼 수도 없었다. 대신 갑옷의 두께와는 상관이 없었다. 짐승의 움직임이 한 박자 느려졌다.

이번에는 라온이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도윤이 벌린 금, 단이 만든 흔들림, 이든이 붙든 앞발, 모아가 버틴 한 걸음이 한 점으로 모였다. 라온의 칼이 금 사이를 끝까지 통과했다. 표지짐승은 무너진 뒤 나무 부스러기와 젖은 길 이름 조각 몇 개가 되었다. 물에 번진 글자는 읽을 수 없었고, 라온은 손대지 않은 채 모양과 흩어진 자리를 수첩에 옮겼다.

해나는 곧바로 모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가 멈췄다. 방패를 받은 자리에 피가 번지고 있었다.

“아까 절단에 힘을 썼어. 지금은 작은 상처만 봉합할 수 있어.”

모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얼굴이 하얬다. 해나가 손끝으로 벌어진 피부를 봉합하자 피가 멎었다. 깊은 상처는 그대로여서 단이 건네준 붕대로 어깨를 다시 감았다. 해나의 두 기술은 같은 생기를 썼다. 확실한 한 번의 피해를 선택하면, 누군가를 회복시킬 여력은 그만큼 줄어든다.

라온은 자신의 칼을 닦았다. 조금 전까지는 노리기와 저격이 같은 자리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칼과 총의 차이뿐이라고. 그러나 시온의 탄은 라온이 닿을 수 없는 선을 맞혔고, 라온의 칼은 시온의 탄이 열 수 없는 틈을 베었다.

일곱이 걷는 길에는, 일곱 개의 거리가 있었다.

나무 부스러기와 젖은 조각은 잠시 형체를 유지하다 바람에 흰 모래처럼 흩어졌다. 일곱 사람은 곧바로 환호하지 않았다. 이든이 사격을 멈춘 뒤에도 총구를 내리지 않았고, 시온은 먼 언덕의 움직임이 멎었는지 한 번 더 살폈다. 단은 반대쪽 돌밭에서 들린 셋의 발소리를 따라가지 않았다. 지금 지켜야 할 것은 사냥감이 아니라 뒤에 남은 행렬이었다.

바람이 흰 모래를 걷어 낸 뒤에야 모아가 방패 끝에 걸린 작은 알을 봤다. 푸른 유리처럼 보였지만 손톱으로 두드리자 속이 찬 소리가 났다. 도윤이 먼저 손을 뻗었다. “표지짐승을 잡으면 이런 것도 나오는 거야?”

“가끔. 색은 누가 마지막에 때렸는지와 상관없어.” 이든이 알의 방패 문양을 확인했다. “청환이네. 방어 기술을 올리는 색.”

도윤은 자기 손목의 주황빛 인장을 내려다봤다. “이번에는 모아 거네.”

“거라기보다 쓸 수 있는 사람이 나라는 거지.” 모아는 다친 어깨를 움직여 보다가 곧 멈췄다. 해나가 알을 그녀의 손바닥에 올려 주며 말했다. “먹어도 그 어깨가 낫지는 않아.” 모아는 지금 필요한 것이 치료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청환을 바로 삼키지 않고 천에 싸서 방패끈 안쪽에 넣었다. 다음 적을 언제 만날지도, 그때 다른 색이 나올지도 아무도 몰랐다.

모아의 팔꿈치에는 돌에 긁힌 자국이 났다. 해나는 상처를 씻고 붕대를 감아도 되는지 먼저 물었다. 모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치료수의 빛은 작은 점처럼 모였다가 금방 꺼졌다. 해나는 숨을 고르고 물병을 건넸다. 치료를 끝냈다고 해도 모아는 방패를 다시 들지 않았다.

도윤은 손목의 인장을 감쌌다. “다음에 세 번 쓰면 네 번째를 기다리지 마.” 이든이 말했다. “네 번째는 없어.”

“알아.”

“네가 안다고 말할 때마다 내가 세어야 하잖아.”

라온은 모래 위에 남은 자국을 그리려다 손을 멈췄다. 바람이 한 번 지나가자 발톱 자국도 흐려졌다. 그는 대신 살아 있는 사람들의 수와 각자가 든 짐을 적었다. 기록은 적을 닮은 흔적이 아니라, 돌아갈 때 놓치지 않을 사람의 이름에서 시작해야 했다.

해나는 일곱 사람에게 상처를 확인해 달라고 했다. 대답은 대부분 “괜찮아”였지만, 그녀는 괜찮다는 말만 받아 적지 않았다. 모아가 왼쪽 어깨를 덜 움직이는 것을 보고 “여기는?” 하고 물었다. 모아는 “조금”이라고 답했다. 해나는 그 정도를 치료수로 지우지 않고 붕대만 고쳐 맸다.

도윤은 그날 이후 세 번의 타격을 쓰기 전에 누가 뒤에서 돌을 치울지 먼저 묻기로 했다. 힘을 쓰는 순간보다 힘을 쓴 뒤 주변에 남는 것을 맡을 사람이 있어야 했다. 첫 전투에서 배운 것은 적의 약점만이 아니었다.

싸움 뒤 첫 휴식에서 모아는 방패를 땅에 눕혀 가장자리의 금을 살폈다. 도윤은 부러진 쐐기를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다음에 길을 고칠 때 쓸 수 있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전투가 끝나도 손에 든 물건은 다음 선택으로 이어졌다.

2. 하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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