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카리온

지도에 없는 일곱째 길 · 소설

18. 돌가게의 조건

마지막 배급을 마친 뒤 오전이 깊어지기 전 연수는 성벽 바깥의 돌가게 주인을 찾아갔다. 주인은 파편 더미와 자갈 자루를 보여 주며 필요한 양을 먼저 물었다.

“솔등에서 받은 받침돌은 여덟 개가 있습니다. 물받이를 놓고 사람이 밟을 구간에 자갈과 널판이 더 필요해요.” 연수가 말했다.

주인은 자갈 열두 자루와 널판 네 장을 내줄 수 있다고 했다. 공짜로 가져가라는 뜻은 아니었다. 가게 뒤 배수로를 오늘 안에 청소하고, 물이 밭 쪽으로 새지 않는지 함께 확인하는 거래였다. 자재는 나루성의 등록된 길 끝까지만 옮길 수 있었다. 그 너머의 시험로를 허가하거나 수레를 보내는 조건은 아니었다.

돌가게 뒤의 밭을 맡은 주민이 대화를 듣고 나왔다. “배수구를 열면 물이 우리 밭으로 들어와요. 지난번에도 모종이 잠겼습니다.”

주인은 마당에 물이 고이면 작업을 못 한다고 했다. 연수는 둘 중 하나의 말을 먼저 믿지 않고 바닥 높이와 물때를 쟀다. 만재는 배수구 입구를 막은 진흙을 조금 걷어 물 한 바가지로 방향을 시험하자고 제안했다. 밭 주인은 물이 자기 밭의 낮은 경계로 향하면 그 자리에서 멈추는 조건으로 동의했다. 주인도 그 조건을 거래 표에 적었다.

서린은 두 사람이 받아들인 일을 소리 내어 다시 읽었다. 배수로 청소와 물길 확인을 하면 자갈 열두 자루와 널판 네 장을 인계한다. 물이 밭 쪽으로 돌면 즉시 작업을 멈추고 새 방법을 의논한다. 사용되지 않은 자재는 해 질 무렵 수량을 맞춰 돌려준다. 돌가게는 주민 수레의 사유 구간을 허락하지 않으며 시험로의 안전도 보증하지 않는다.

주인은 물건을 내놓기 전에 모두가 직접 살펴보게 했다. 자갈 자루는 열두 개였다. 널판은 네 장이었고, 셋은 가장자리가 곧았다. 네 번째는 끝이 아주 조금 휘어 있었다. 라온이 무게를 견딜지 묻자 주인은 “쓸 수 있다고 장담하지 않겠소. 시험하되 휘면 다시 가져오시오”라고 답했다. 그 판도 수령 수량에 넣고, 사용 여부는 현장에서 정하기로 했다.

자재를 받기로 한 것이 길을 얻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밭 주인은 배수로가 열려도 물이 어디까지 흐르는지 자기 눈으로 볼 때까지 거래 완료로 적지 말아 달라고 했다. 주인은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연수는 오늘 확인할 범위와 멈출 조건을 종이 양쪽에 각각 서명했다.

서명란 옆에는 일을 맡겠다고 한 주민만 자기 표시를 남겼다. 한 청년은 손목이 아파 배수로에서 진흙을 퍼내지 않겠다고 했고, 표찰을 들고 물의 방향을 기록하겠다고 말했다. 주인은 그 일이 자재 거래에 포함되는지 물었다. 연수는 배수로 청소와 확인이 거래 조건이고, 누가 어떤 방법으로 참여할지는 주민들이 정한다고 답했다. 청년은 자루의 출처를 기록하는 줄을 골랐다.

밭 주인은 거래가 끝나도 다음 비에 같은 방향으로 물이 흐른다는 보장은 없다고 덧붙였다. 주인은 동의했다. 오늘 확인한 물길이 다음번에도 같다고 말하면 그때는 새로 조건을 세우기로 했다. 서린은 이 말을 거래표의 비고란에 적고, 두 사람이 읽었는지 직접 확인했다. 그들이 서명한 것은 내일의 날씨가 아니라 오늘의 작업 범위였다.

자루마다 묶인 끈에는 돌가게 표식이 있었다. 몇 자루는 바닥 쪽이 축축했지만 겉에서 무게만 보고 안쪽까지 말랐다고 할 수는 없었다. 미선은 젖은 자루를 수레 위쪽에 올리지 말자고 했다. 자루가 찢어지면 자갈 수량이 줄어드는 것보다 바닥에 흩어진 돌을 다시 치우는 일이 더 오래 걸릴 터였다. 주인은 열두 자루를 모두 내놓되, 자루가 상하면 깨끗한 빈 포대 하나를 빌려 주겠다고 했다. 새 자갈을 더 얹어 주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연수는 네 널판의 길이를 줄자로 재고 양 끝의 균열을 살폈다. 휘어진 판은 세 번째와 비슷해 보였지만, 바닥에 내려놓으니 끝이 조금 들렸다. “이 정도면 작은 사람은 괜찮지 않겠소?” 주인이 물었다. 지안은 누가 건너든 같은 무게가 아니므로 사람의 크기를 기준으로 안전을 약속하지 않겠다고 했다. 널판은 시험 표식을 달아 수령하되, 넘어지거나 휘면 돌려주기로 했다. 그 조건은 누구에게도 손해를 숨기지 않았다.

주인은 네 번째 널판에 묶어 둔 낡은 끈을 풀었다. “작년 비 뒤에 이 끝이 조금 휘었소. 창고에서 말릴 때는 펴진 줄 알았지만, 사람 무게를 실으면 다시 내려갈 수 있어.” 그는 판을 숨기지 않은 까닭을 묻지 않았다. 연수는 값을 깎거나 다른 판을 더 달라고 하지 않았다. 안전하지 않으면 쓰지 않고 되돌리겠다는 조건만 장부에 보탰다.

돌가게 일꾼은 자갈 자루를 한 번 옮길 때마다 허리끈을 바꿔 매었다. 주인은 일꾼의 손이 저려 오는 것을 보고 바구니를 내려놓게 했다. “오늘 거래는 배수로를 여는 일이지, 이 사람이 얼마나 오래 버티는지 보는 게 아니오.” 연수는 사람이 나중에 빠져도 거래가 취소되지 않도록, 대체 인원은 본인이 동의할 때만 표에 이름을 적기로 했다.

라온은 가게 문을 막지 않을 시간도 확인했다. 돌을 다듬는 손님이 들어오면 수레를 멈추고 통로를 비워야 했다. 작업 속도를 높이면 운반 횟수가 줄어들 수 있었지만, 그 틈에 누가 다칠 수 있었다. 미선은 바퀴를 재촉하지 않겠다고 했고, 주인은 점심 무렵 문을 닫아 자재를 옮길 시간을 따로 주겠다고 했다. 거래에는 재료만 아니라 서로의 작업 시간을 비워 주는 약속도 들어갔다.

밭 주인은 자갈 자루를 가리켰다. 물이 막히면 가게 마당은 잠기지만, 흙이 자기 밭으로 흘러오면 씨앗을 다시 구해야 한다. 주인이 자재를 내주는 동안 밭 주인에게 손해가 옮겨 가는 거래가 되어서는 안 됐다. 그는 내년에도 같은 밭을 맡을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오늘 물길을 확인하는 이유는 다음 해까지 맡겠다는 약속과 무관했다.

연수는 종이 한 장을 양쪽이 나눠 갖자고 했다. 가게에는 자재 수량과 반환 기한을, 밭 주인에게는 확인한 물의 방향과 멈춤 조건을 남기기로 했다. 세 사람은 자기 서명을 상대의 문장 아래에 붙이지 않았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조건을 대신 승인하지 않도록 종이를 가로로 나눴다. 서린은 두 장부의 출처란을 비워 두지 않고 각각 돌가게와 밭이라고 적었다.

18. 돌가게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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