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카리온

지도에 없는 일곱째 길 · 소설

23. 의뢰를 고르는 저녁

열셋째 날 저녁, 두 계약서는 바람에 날려 게시판에서 서로 포개졌다. 도윤은 높은 보수 쪽을 먼저 잡았고, 다래는 약재 수레 쪽을 잡았다. 둘이 잡은 종이를 이든이 벌려 놓았다.

“둘 다 같은 길이긴 해. 그런데 수리공의 축 고정쇠는 열다섯째 날 해 질 때까지, 약재는 그날 오전까지 진료소에 줘야 해.” 이든이 말했다. “선금 열 닢에서 노새 사료 둘, 여관 셋, 예비 부속 둘을 빼면 셋 남아. 수레가 멈추면 잔금보다 손해가 먼저 와.”

“그래도 갈래요.” 다래가 말했다. “석주랑 운송 임금은 따로 계약했어요. 노새가 멈추면 우리가 정지할 겁니다. 그때 앞으로 달려갈 사람도 같이 멈춰야 해요.”

조합장은 다래에게 계약서의 정지 조항을 직접 읽게 했다. 다래는 두 번 읽고 한 글자를 지웠다. 원래는 ‘길잡이 판단에 따라 수레를 멈춘다’였다. 그녀는 그 앞에 ‘운송자’라고 썼다. “노새 발을 보는 사람도 권한이 있어야 해요.” 이든은 고쳐 쓴 문장을 보고 선금 계산 밑에 자기 이름을 적었다. 값을 따지던 그의 손이 한 번 망설였다. 수레가 멈추면 의뢰를 잃을 수 있었다. 그래도 그 조항이 없다면 책임을 계산하는 일부터 거짓이 된다.

단은 짧은 첫 노새길을 손가락으로 그렸다. “걸으면 두 시간을 아끼지. 수레도 그럴지는 안 가 봤어.” 시온이 그의 종이를 뒤집었다. “안 가 본 길은 네 발로 증명할 수 없어.”

“그래서 너랑 같이 보고 싶어.” 단이 말했다. 시온은 웃지 않았지만 종이를 돌려주었다. 멀리 보이는 굽이와 바퀴가 통과하는 폭이 다르다는 건 둘 다 알았다.

도윤은 계약 끝에 적힌 ‘쇠마루 마당 대련’을 발견했다. “이건 보수에 포함이야?”

“네가 지면 우리가 내는 거겠지.” 모아가 말했다.

“내가 왜 져?”

“세 번째 파워 다음에 숨을 고르잖아.”

도윤은 주황 띠를 한 번 당겼다. 자기 색의 환이 생기면 한 타를 더 얻는다고 믿던 때가 있었다. 모아의 청환은 방어 인장을 한 획 올렸지만 어깨를 낫게 하지 못했다. 도윤은 네 번째 파워를 꿈꾸는 대신 쇠마루 수리공에게 세 타 사이의 빈 박자를 묻고 싶었다. 그는 계약서에 자기 이름을 적기 전 이든이 손질 중인 총을 봤다. 이든도 새 총을 원했지만 지금 가진 일반탄 열 발과 흔들리는 노리쇠를 먼저 다루고 있었다.

해나는 약재 상자의 두 표찰을 반대로 읽고는 다래가 짚어 준 색실을 다시 봤다. “북쪽은 같은 뿌리를 다른 물에 달인다던데. 진료소 사람이 받기 전에는 열지 않을게요.” 약을 아는 척하기보다 물어볼 이유가 생긴 얼굴이었다. 모아는 방패를 수레에 묶되 꺼낼 때를 자신이 결정한다고 했다. 라온은 각자 가고 싶은 곳이 달라서 오히려 한 수레 옆을 걸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조합장 앞의 훈련판에는 일곱의 마지막 측량 때 남긴 붉은 표시가 있었다. 라온은 손을 뻗어 출발 길을 그리다, 주민 수레가 돌아설 자리에서 멈췄다. 예전 같으면 단의 빠른 발만 믿고 선을 좁혔을 것이다. “첫 굽이에서 수레 폭을 다시 볼게요.” 단이 자기 그림에 없는 넓이를 남겨 두었다. 조합장은 그 선을 지우지 않았다. 그는 ‘성장’이라고 적힌 평가 칸 대신 빈 운송 칸을 내밀었다. 이번 의뢰가 끝나야 거기에 쓸 말이 생긴다.

라온이 그 판을 접자 도윤이 “그러면 돌아와서 이기면 되는 거야?”라고 물었다. 조합장은 “누구에게?” 하고 되물었다. 도윤은 입을 열었다 닫았다. 이번 길에서는 상대를 때리는 것보다 상자가 먼저 도착해야 했다. 모아는 그가 대답을 못 하는 사이 방패 걸이를 확인하고 손을 뗐다. 도윤은 조합장의 평가보다 쇠마루에서 자기 숨이 언제 끊기는지 알고 싶어졌다.

조합장은 일곱의 지난 구조·측량 기록을 접어 새 현장 평가표 사이에 넣었다. “돌아와서 어떻게 움직였는지 보겠다”고만 말했다. 일곱은 그 말에 대답 대신 자기 장비를 다시 챙겼다.

서린은 계약서가 아니라 라온의 접힌 편지를 보았다. “북쪽에서 누가 온새미 몫을 가져갔는지 물어봐 줘. 하지만 그걸 듣고 용서할지, 복수할지 네가 대신 고르지 마.”

“알아온 것과 짐작한 걸 나눠서 전할게.”

“그거면 돼.” 서린은 주민 작업장에 남았다. 미선과 만재는 각자 맡은 열쇠를 지키고, 다래와 석주는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수레 일에 나선다. 누구도 일곱을 기다리느라 일감을 멈추지 않았다.

서린은 접힌 편지를 라온에게 돌려주기 전에 모서리를 한 번 눌렀다. “지난번에 돌아왔을 때는 네가 답을 가지고 오면 내가 바로 고를 수 있을 줄 알았어.” 그녀는 열린 작업장 너머에서 여울이 마른 패를 고르는 걸 보았다. “그런데 내가 고를 때까지 여기 사람들의 하루는 계속돼. 그러니까 네가 못 찾으면 못 찾았다고 보내 줘.” 라온은 빈 답을 실패로 숨기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서린은 그 약속에만 고개를 끄덕였다.

높은 산등성이에는 열여섯째 날 찬 비나 진눈깨비가 올 수 있었다. 북부 전체의 첫겨울눈은 아직 몇 주나 남았지만, 젖은 바퀴에는 하루의 날씨도 충분했다. 일곱과 운송자 둘은 큰길을 기본으로 하되 첫 굽이에서 다시 판단하기로 했다. 이든이 탄창을 잠그자 도윤이 물었다. “이제 출발이야?”

“내일 아침.”

“그럼 오늘 밤은 한 번 이겨 볼 수 있겠네.”

“누구를?”

“나를.” 도윤은 망치 대신 빈손으로 세 번 자세를 바꿨다. 셋째에서 또 숨이 차자 모아가 먼저 웃었다. 그는 그 웃음에 화내지 않았다.

23. 의뢰를 고르는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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