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마루 축제의 불빛 아래에서 도윤은 주황 띠를 다시 맸다. 모아는 그 옆의 말판을 펼쳤다. “세 수를 읽고 나가.”
“사람이 말처럼 서 있겠어?”
“안 서 있으니까 봐야지.” 모아가 도윤의 첫 말을 한 칸 옮겼다. 해나는 두 사람이 또 다툰다고 웃었고, 라온은 마을 사람들이 대련장 주위에 안전선을 치는 걸 도왔다. 석주와 다래는 수레를 쉬게 한 뒤 광산에서 온 이들과 식사를 나눴다. 그들은 일곱의 구경꾼이 아니라 제 일터가 닫힌 동안 다음 목재를 어디서 구할지 이야기했다.
도윤은 그 말을 들으며 내일 갱도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알았다. 자기 대련은 그들의 밤 한가운데 잠깐 빌린 원이었다. 마을 장인이 안전선을 다 치기 전에는 망치를 들지 않았다. 윤호가 원 안으로 들어와 손목에 흰 천을 감자 도윤도 같은 천을 맸다. 상대가 몸을 돌릴 때 그 작은 흰 선만 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상대는 기련의 견습공 윤호였다. 도윤보다 키가 작고 쥔 나무망치도 가벼웠다. 세 번 맞히면 이기는 규칙이 아니라 상대의 손목에 표식을 먼저 찍는 대련이었다. 판정은 기련이 아니라 마을의 다른 장인이 맡았다. 윤호가 첫발을 옆으로 빼자 도윤의 큰 동작이 허공을 갈랐다.
첫 타가 빗나갔을 때 도윤은 크게 돌지 않고 발을 다시 놓았다. 두 번째 타는 윤호의 손목 가까이 갔다. 마을 사람들이 한 번 소리를 냈다. 도윤은 이미 세 번째 힘을 모으고 있어 그 소리에 돌아볼 수 없었다. 윤호의 발꿈치가 원의 흰 선을 스쳤다. 그쪽으로 달리면 이길 것처럼 보였다. 모아는 말판 위에서 도윤의 말이 갇히던 칸을 떠올렸다. 그녀가 “왼쪽”이라고 외치기 전에 윤호가 비켜섰다. 도윤의 세 번째 타가 비어 있는 자리를 지나갔다. 그가 다음 숨을 들이쉬는 박자에 윤호의 나무망치 끝이 손등에 톡 닿았다.
“윤호 승.” 장인이 말했다.
도윤은 맞은 손을 보았다. 아프지 않았다. 더 큰 타격을 낼 힘이 남아 있었으나 규칙 안에서 이미 졌다. 밤마다 네 번째 타를 상상하던 게 우스워졌다. 윤호는 자신이 첫발을 옆으로 뺀 이유를 보여 주었다. 도윤의 세 번째 힘이 모이는 자리를 피하면 네 번째가 오기 전에 빈자리가 생겼다.
도윤은 판정이 나온 뒤에도 망치 자루를 놓지 못했다. 힘을 더 쓰면 되지 않느냐는 말이 목끝까지 올라왔다. 윤호는 손목에 묻은 도윤의 먼지 자국을 보여 주었다. 두 번째 타가 조금만 더 짧았어도 흰 천에 닿았을 것이다. 도윤은 자기 패배가 힘이 모자란 탓만은 아님을 눈으로 봤다. 그 사실이 위로가 되기보다 다시 해 보고 싶게 만들었다.
“한 번 더.” 도윤이 말했다.
“내일.” 윤호는 대련장 밖의 물통을 가리켰다. “오늘은 네 호흡이 보여요. 내일은 내가 다시 찾아야죠.” 도윤은 처음으로 지고도 다음 날이 기다려졌다. 주황 환이 우연히 떨어져 자신을 바꾸어 줄 날을 기다리는 것과 달랐다. 그는 모아에게 돌아와 말판 첫 수를 자신이 옮겼다. 모아가 막자 웃으면서 물러났다.
마을 교환대에는 사냥꾼이 가져온 작은 청색 환 하나가 있었다. 도윤은 주황색을 찾다가 빈 칸 앞에 섰다. 청환의 값은 지금 일곱이 줄어든 납품 보수를 메우려고 아끼는 돈보다 컸다. 그가 값표를 오래 보자 모아가 자기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가 찡그렸다. “내 색이라고 내 몸을 다 고친 것도 아니야.” 도윤은 값표에서 손을 떼었다. 환 하나를 사려고 동료의 운송 몫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윤호의 손목에 남긴 먼지 자국은 돈을 내지 않아도 내일 다시 시험할 수 있었다.
시온은 축제의 과녁에서 이든의 총을 빌리지 않고 거리만 쟀다. 바람이 불 때 표적 끈이 얼마나 움직이는지 적었다. 이든은 남은 탄을 축제 놀이에 쓰지 않았다. 해나는 의원과 조리대에서 뜨거운 물을 옮겼다. 라온은 마을 종을 울릴 때 사람들이 먼저 광산 쪽을 바라보는 걸 보았다. “어젯밤에는 그 소리가 안쪽까지 들렸을까요?” 그는 아루에게 물었다. 아루는 모른다고 했다. 대신 두 번 두드린 소리를 듣고 정비 통로를 열었던 자신들의 순서를 알려 주었다. 라온은 그 순서만 적었다.
아루와 함께 온 늙은 운반인이 라온의 쪽지에서 ‘서창-6’을 알아봤다. “그건 물건 이름이 아니고 창고 묶음 번호예요. 지난번엔 북쪽 종지기들에게 갔죠.” 라온이 종지기를 물으려 하자 운반인은 수레 끈을 가리켰다. “내가 본 건 겉표와 받는 사람의 인장뿐.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모르오.” 그는 북쪽의 작은 길을 그려 주었다. 단은 그 길에 ‘사람 통행’이라고만 적었다. 라온은 운반인의 말 아래에 ‘확인된 것’과 ‘미확인’ 두 줄을 따로 그었다. 서린에게 보낼 말은 아직 한 줄뿐이었다.
운반인은 라온이 자기 이름을 쓰려 하자 손을 막았다. “내가 말한 만큼만 적어요. 못 본 속을 본 것처럼 쓰면 나도 곤란해.” 라온은 이름 대신 ‘쇠마루 운반인, 겉표 확인’이라고 적고 그 문장을 소리 내어 읽어 주었다. 운반인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같았으면 한 줄의 단서를 잡고 서린에게 답장을 보냈을지 몰랐다. 이제는 누가 무엇을 봤는지까지 써야 한 줄이 된다는 걸 알았다.
도윤은 멀리서 그 대화를 듣고 “그래도 북쪽에 하나는 있잖아”라고 했다. 라온은 그의 ‘하나’가 답인지 단서인지 물었다. 도윤은 잠시 생각한 뒤 “찾아갈 사람”이라고 했다. 아침에 윤호를 다시 만나는 것도 그에게는 비슷했다. 진 사람이라서 숨기고 돌아갈 필요는 없었다. 그는 말판을 모아에게 돌려주지 않고 내일 아침까지 자기가 맡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