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사흘째 날, 장터의 낮은 길은 넓어지지 않았지만 사람이 다니는 순서가 달라졌다. 먼저 내려가는 지게가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게 돌과 장작을 싣고 왔다. 수리공 셋은 남겨 둔 도르래와 공구 상자 값도 일당에 넣었다. 류건은 자루 하나가 터진 날짜를 적고, 운송자는 빈 수레의 바퀴살을 기억나는 대로 그렸다. 모아는 오른팔을 높이 들지 못해 지게를 메지 않고 가벼운 줄 끝을 잡았다. 도윤은 파워 없이 돌을 깨다 금세 지쳤다. 사람들은 망치 소리가 느리다고 비웃지 않았다. 그 느린 소리만큼 길이 열렸다.
재겸은 북부 관청의 조사 담당을 데리고 돌아왔다. 조사 담당은 도착하자마자 원표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기주는 북쪽 초소에 자기 이동표 원본을 걸어 두고 있었고, 서린의 청구 원본도 나루성에 있었다. 라온은 그 둘을 줄 수 없었다. 누리의 종 기록을 옮긴 사본, 운반인이 돌려받은 현재 호송표의 글씨, 재겸이 가져온 전용표와 인력 재고표의 확인된 부분을 펼쳤다. “원본은 본 사람의 자리에서 확인하세요. 여기엔 누가 언제 어떤 글씨를 봤는지 적었습니다.” 조사 담당은 불편한 얼굴로 출처를 하나씩 물었다. 라온은 그 불편함까지 기록했다. 쉽게 가져간 종이가 더 빠른 답을 만들 수는 있지만, 다시 돌려줄 수 없는 사람도 있었다.
배급 줄에서 재겸의 종을 들었다던 여자가 다시 앞으로 나왔다. 북쪽에서 살아온 가족의 이름을 전부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종이 울린 날과 자기 집 지붕이 무너진 날만 증언했다. 재겸의 긴급 전용이 공허한 변명이 아니었다는 근거였다. 이어 류건은 식량 호송의 낮은 길 지시와 현장 수레 포기 결정을 나눠 말했다. 운송자는 잃은 바퀴값을, 수리공은 도르래 없이는 낮은 길에서 일손이 두 배 든다고 말했다. 서로 다른 목소리가 같은 재겸을 가리켰지만 같은 죄를 말하지는 않았다.
조사 담당이 먼저 현재 호송표의 재겸 서명을 가리켰다. “이 길은 왜 택했습니까?” 재겸은 높은 길의 수리 폐쇄와 낮은 길의 통행 보고를 보였다. 류건이 돌 틈에서 사람을 내린 시각은 그 보고 뒤였다. 조사 담당은 그 답을 적고 나서 별도 줄에 지난달 인력표를 올렸다. 한 장은 당시 알 수 없던 낙석 앞의 지시였고, 다른 한 장은 알게 된 뒤 막은 답신이었다. 라온은 그 순서가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참았다. 화난 마음으로 두 날짜를 한 칸에 넣으면 서린에게 보낼 답도 흐려진다.
재겸은 자신이 막은 답신 초안을 직접 읽었다. ‘대체 인력 출발 확인 불가.’ 거기까지 읽고 종이를 내려놓았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보류했어요.” 조사 담당이 “왜 기록을 나중에 고쳤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전용의 이유를 남기려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잠시 뒤 덧붙였다. “내가 답을 막은 시각이 늦게 보이도록도 했습니다.” 류건은 입술을 다물었다. 라온은 두 번째 이유를 놓치지 않고 적었다. 북부 생존자에게 필요한 종을 보낸 선택과, 온새미에 진실을 늦게 알린 선택이 마침내 다른 이름을 얻었다.
재겸은 인장을 풀기 전에 가죽끈이 손목에 걸려 잠시 멈췄다. 조사 담당이 대신 자르려 하자 그는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끈이 끊어지자 손목에 오래 눌린 자국이 남았다. 배급 줄의 여자는 그를 바라보다 돌아섰고 운송자는 자기 수레값이 적힌 칸을 확인했다. 어느 쪽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직책을 내놓는 순간보다 앞으로 돈과 물자를 돌려받는 날이 그들에게 중요했다.
조사 담당은 그날 재겸의 인장을 회수하고 북부 보급관 업무에서 물렸다. 잃은 식량 한 자루, 운송자 수레 한 대, 높은 난간의 도르래와 공구, 낮은 길 응급 보수비는 북부 보급 예산에서 먼저 지급하기로 했다. 낙석과 류건의 현장 결정을 누구에게 얼마나 물을지는 따로 조사할 일이었다. 온새미가 잃은 시간과 인력은 서린과 실제 일한 주민의 청구를 받아 재겸의 답신 은폐 책임과 연결해 별도로 계산한다. 아직 액수가 비어 있는 칸을 라온이 보았다. 직책을 잃었다고 그 칸이 저절로 채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재겸은 인장을 내놓은 손으로 수레 운송자의 이름을 다시 적었다. 서명만으로 사람들에게 물건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해나는 장터를 떠나기 전 본대에서 내려온 아이의 팔 붕대를 한 번 더 봤다. 상처 가장자리에 붉은 선이 남았지만 손가락은 잘 움직였다. 그 옆으로 후미 수리공 가족의 아이가 작은 못을 쥐고 달려왔다. “이건 안 잃었어요.” 팔을 다친 아이가 멀쩡한 손으로 못을 한번 만져 보고 돌려줬다. 해나는 “다음엔 둘 다 손바닥을 다치지 않게 쥐어”라고 했다. 모아는 아이가 돌아서자 라온에게 “서린이 이 말을 들으면 뭐라고 할까?”라고 물었다. 라온은 “내가 정할 수 없지”라고 했다. 그는 북부의 종과 막힌 답신, 재겸의 서명, 아직 비어 있는 보상 칸을 같은 봉투에 넣지 않았다. 날짜별로 나눠 서린이 직접 읽을 수 있게 했다.
조사 담당은 재겸에게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사람을 남겨 두었다. 재겸은 서린의 이름을 말했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 사람의 주소를 내가 먼저 찾아가도 됩니까?” 라온은 대신 답하지 않았다. 서린은 자기 이름으로 청구했고, 자기 손으로 답을 읽겠다고 했다. 그는 재겸에게 사본이 전달될 길과 서린이 거절할 권리를 같이 적어 줬다. 재겸은 그제야 이름 옆에 인장을 잃은 손으로 서명했다.
일곱이 떠나는 날 류건은 낮은 길 첫 굽이에서 그들을 배웅했다. 주민 스물은 저마다 머물 곳을 찾았고, 여섯 호위·운송자는 새 수레를 기다리며 일을 나눴다. 앞 수레 두 사람은 누리의 마을에서 다시 짐을 골랐고 후미 일곱은 장터 아래 쉼터에 있었다. 다리 절단은 그들을 한곳에 가둔 끝이 아니었다. 빠른 길을 잃은 사람들의 일과 비용이 길게 이어지는 시작이었다. 단이 먼저 굽이를 돌자 누리의 종이 늦게 한 번 들렸다. 라온은 그 느린 소리를 이번에는 실패로 듣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