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소 유리문에는 내일부터 영업하지 않는다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은주는 종이의 네 귀퉁이를 전부 테이프로 막았다. 바람이 들면 종이가 펄럭였고, 그러면 아직 뭔가 할 말이 남은 것 같았다.
벽시계는 열한 시 사십이 분이었다. 마지막 세탁기의 남은 시간은 십칠 분이었다. 은주의 겨울 이불이 그 안에서 돌고 있었다. 다음 집에는 베란다가 없었다. 오늘 말려 가야 했다.
문이 열렸다.
“끝났어요?”
청년은 대답을 듣기도 전에 젖은 운동화를 매트 바깥으로 물렸다. 회색 배달 가방에서 비닐봉지를 꺼냈다. 봉지 안에는 흰 셔츠가 있었다.
“세탁은 안 되고 건조만요.”
“그것도 열두 시까지예요.”
“몇 분이면 돼요?”
은주가 셔츠를 받아 들었다. 옷에서 세제 냄새가 났다. 소매 끝을 쥐자 물방울이 손목으로 흘렀다.
“손으로 빤 거예요?”
“방에 세탁기가 없어서요.”
은주는 건조기의 온도표 대신 목 안쪽의 세탁표시를 폈다. 면과 폴리에스터. 다행이었다. 옷깃에는 다림질을 여러 번 잘못한 듯 반짝이는 선이 있었다.
“그대로 넣으면 오래 걸려요. 탈수부터 해야 해요.”
청년은 시계를 봤다.
“내일 입을 거예요?”
“다섯 시 반에요.”
“아침에?”
“빵집 면접이요. 일하는 거 보고 뽑는대요.”
그는 휴대전화의 채용 공고를 펴 보였다. 은주는 읽지 않았다. 젖은 손으로 화면을 만지지 말라고만 했다.
제일 작은 세탁기는 고장이었다. 은주가 붙인 고장 표시는 작년 가을부터 붙어 있었다. 그 옆 기계는 탈수만 따로 걸 수 없었다. 가능한 것은 이불이 든 마지막 기계뿐이었다.
“십칠 분 남았으니까 그다음에—”
은주는 말을 끊었다. 그다음이면 영업시간이 끝났다.
청년도 숫자를 보고 있었다.
“제가 너무 늦게 왔죠.”
“비가 늦게 그쳤죠.”
은주는 의자에 걸어 둔 큰 세탁 바구니를 내렸다. 세탁 중단과 배수 버튼을 누르자 통 안의 이불이 천천히 주저앉았다. 물이 다 빠지고 잠금이 풀릴 때까지 두 사람은 문 앞에서 기다렸다.
“그거 손님 거 아니에요?”
“내 거예요.”
“그럼 그냥 하세요. 저 다른 데—”
“다른 데 알아요?”
청년은 대답하지 못했다.
은주는 문을 열고 이불을 끌어냈다. 바구니 바닥에 물이 고였다. 물먹은 이불의 무게는 혼자 감당할 수 있었지만, 그걸 새벽까지 들고 가는 일은 벌써부터 어깨가 아팠다.
셔츠 한 장만 넣으면 통이 기울 수 있었다. 은주는 닦아 둔 수건 두 장을 함께 넣고 탈수를 걸었다.
“사 분. 그다음 건조.”
청년이 동전지갑을 열었다. 오백 원짜리 다섯 개와 백 원짜리 몇 개가 있었다.
“탈수는 얼마예요?”
“탈수는 오백 원. 건조는 삼 분에 오백 원이에요.”
은주는 가격표를 가리켰다. 청년은 동전을 세다가 한 개를 떨어뜨렸다. 바닥에서 구른 백 원짜리가 빈 세제통 밑으로 들어갔다. 은주는 빗자루로 동전을 밀어냈다.
청년이 말했다.
“공짜로 해 달라는 건 아니었어요.”
“나도 그렇게 안 들었어요.”
그는 동전을 주워 손바닥에서 물기를 닦았다.
세탁기가 빨라졌다. 가게가 가득 찼을 때는 들리지 않던 작은 떨림이 바닥을 통해 올라왔다. 은주는 기계 위에 손을 올렸다. 일정한 진동이었다. 아직은 잘 돌았다.
“여기 없어진대서요.” 청년이 유리문을 봤다. “다른 데로 가시는 거예요?”
“가게는 안 해요.”
“아.”
그 한마디 다음에 흔히 따라오던 질문이 오지 않았다. 왜, 얼마나 손해를 봤는지, 자식은 있는지. 은주는 그 침묵이 편했다.
“병원 세탁실에 가요. 다음 주부터.”
“그럼 또 세탁이네요.”
“네. 가게 문은 안 열어도 되고요.”
그렇게 말하니 처음으로 조금 괜찮은 일처럼 들렸다.
탈수가 끝났다. 은주가 셔츠를 꺼내자 청년이 두 손을 내밀었다. 물이 거의 빠진 옷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건조기에는 구 분을 넣었다. 열한 시 오십일 분이었다. 청년이 휴대전화로 정확히 알람을 맞췄다.
“열두 시에 제가 꺼낼게요.”
그가 가방을 내려놓자 어깨의 배달 조끼 자국이 보였다. 은주는 이불 바구니를 문 가까이 옮겼다. 바구니 손잡이 한쪽이 희게 갈라져 있었다. 내일 아침 이삿짐 차가 오기 전까지 집에서 한 번 더 물을 빼야 했다.
청년이 그것을 보고 일어났다.
“아까 멈춘 거 다시 돌리면 안 돼요?”
“끝나면 늦어요.”
“십칠 분이었죠?”
“이제 사 분 썼으니까 다시 맞춰야죠.”
그는 잠시 계산하더니 건조기 앞 의자로 돌아갔다. 잘못 나선 사람처럼 목을 숙이고 휴대전화만 보았다.
은주는 계산대 서랍을 비웠다. 누가 놓고 간 머리끈 세 개, 단추 하나, 오래전에 발행을 멈춘 적립 도장. 마지막 도장판에는 칸이 둘 남아 있었다. 여덟 번 왔던 사람이 두 번 더 오면 무료로 세탁할 수 있었는데, 이름도 전화번호도 없었다.
은주는 그 판을 버리지 못하고 가방의 바깥 주머니에 넣었다.
청년의 알람이 울렸다.
셔츠는 몸통이 말랐고 소매와 목둘레가 축축했다. 청년은 곧바로 입으려 했다.
“그대로 입으면 다시 젖어요.”
“집에 가서 걸어 두면 돼요. 네 시간은 있으니까.”
은주는 옷깃을 손등에 대 보았다. 서늘했다. 한 번만 더 돌리면 될 것 같았다. 건조기는 삼 분에 오백 원이었다.
청년이 먼저 가격표를 봤다.
“오백 원 더 있어요.”
동전 한 개가 그의 손바닥에 있었다.
은주는 벽시계를 봤다. 분침이 열두 시에 닿아 있었다. 오늘을 끝내려고 이십 분 전부터 마음을 접고 있었는데, 끝나는 데에도 시간이 더 필요했다.
“삼 분 더 하죠.”
동전이 들어갔다. 셔츠가 다시 들렸다 떨어졌다.
은주는 휴대전화를 꺼내 이삿짐 기사에게 남길 메모를 고쳤다. ‘이불 세탁 완료’를 지우고 ‘젖은 이불 별도, 바구니째 운반’이라고 썼다. 젖은 것을 말랐다고 적어 두면 내일 누군가 또 난처해질 터였다.
청년이 가방에서 마른 비닐봉지를 꺼냈다. 바닥을 접어 두 겹으로 만들더니 이불 바구니 밑에 받쳤다.
“이렇게 하면 바닥에 안 떨어져요.”
“고마워요.”
“집은 멀어요?”
“바로 위층이에요.”
그는 계산이 끝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삼 분은 짧았다. 이번에는 옷깃까지 따뜻했다. 은주는 깨끗한 종이를 길게 말아 목둘레에 끼우고, 접힌 자리에 손바닥을 댔다. 다림질만큼은 아니어도 구김이 조금 펴졌다.
“면접 잘 봐요.”
“네. 안 되면 다른 데 가고요.”
청년은 웃지 않고 말했다. 그래서 은주도 ‘꼭 될 거예요’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셔츠를 넣은 봉지를 배달 가방 맨 위에 얹은 뒤, 그는 이불 바구니의 갈라지지 않은 손잡이를 잡았다.
“제가 이쪽 잡을게요.”
은주는 괜찮다고 하려다 반대편을 들었다.
둘이 들자 바구니가 바닥에서 똑바로 떨어졌다. 은주는 가게 불을 끄고 문을 잠갔다. 열쇠가 마지막으로 한 바퀴 돌았다. 청년은 계단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층까지는 열여덟 계단이었다. 여섯 번째에서 은주가 숨을 골랐다. 청년은 재촉하지도, 혼자 들겠다고 하지도 않았다. 바구니 한쪽을 든 채 잠깐 같이 서 있었다.
현관 앞에 이불을 내려놓았을 때, 그의 셔츠가 든 봉지에도 물은 묻지 않았다.
“이건 돌려드려야 돼요?”
청년이 아래층 가게를 가리켰다. 은주는 처음에는 바구니를 말하는 줄 알았다.
“백 원이요. 아까 빗자루로 꺼내 주신 거.”
“그건 본인 돈이었잖아요.”
“아, 그렇죠.”
그제야 청년이 웃었다. 은주도 웃었다. 늦은 밤 계단에서 그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났다.
그가 돌아간 뒤 은주는 이불을 욕실 바닥에 펼쳤다. 마르려면 하루가 더 걸릴 것 같았다. 고장 난 작은 세탁기와 못 채운 도장판을 생각하면, 삼 분 때문에 문을 늦게 닫은 일이 무슨 대단한 보상은 아니었다.
그냥 오늘 마지막으로 한 일이었다.
은주는 메모에 ‘이불: 젖음’을 남겨 두고, 다음 주 출근 알람을 맞췄다. 오전 네 시 사십 분. 알람 이름을 ‘가게 열기’에서 ‘출근’으로 바꿨다.
저장 버튼을 누르고도 휴대전화는 아무 소리를 내지 않았다.
은주는 그것을 머리맡에 놓았다. 아래층에서 세탁기가 돌아가지 않는 첫 밤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