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새미를 아세요?” 라온의 질문은 빨랐다. 기주는 종을 한 번 울리고서야 대답했다. “가는 길을 맡기로 했어요. 그때는요.”
라온이 그 말의 끝을 기다리는 동안 초소 뒤의 작은 방에서 열이 나는 아이가 기침했다. 해나가 문을 반쯤 닫아 찬 바람을 막았다. 기주는 줄을 다시 쥐었다. 종을 세 번 울리면 누리의 마을이 정해진 대답을 보내는 시간이었다. 그는 말을 잘라 먹는 사람처럼 문장 사이마다 종을 쳤다. 라온은 그 간격이 일부러 답을 피하는 것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기다리기 어려웠다.
“서쪽 인력소에서 온새미 교대 표를 받았어요. 출발 전날 북쪽 초소가 사람을 잃었다는 전갈이 왔고, 내 이름을 여기로 옮겼죠.” 기주는 손바닥의 천을 고쳐 감았다. “나는 여기에 와서 이 줄을 잡았어요. 그날 밤 북쪽 골짜기 세 집이 종을 따라 내려왔어요. 한 집은 먼저, 두 집은 동틀 무렵이었습니다. 그 사람들 얼굴은 압니다.”
그는 줄을 당기는 손을 잠시 멈추고 문 쪽의 낡은 망치를 가리켰다. “첫날은 줄이 너무 젖어서 저걸로 종 아래를 쳤어요. 반대편에서 답이 안 왔을 때는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죠.” 기주는 밤새 같은 간격으로 쳤고, 동틀 무렵 두 집의 사람들이 현관 아래에 나타났다. 노인은 발을 절었고, 아이는 젖은 숄을 두 번 접어 끌고 왔다. 기주는 그 숄의 색을 아직 기억했다. 그 기억이 온새미의 빈 종탑을 채우지는 못했다. 라온은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두 집이 살았다는 말에 기뻐할 자신이 더 화가 났다.
라온은 누리의 접수책에서 본 세 집의 흔적을 떠올렸다. 그 기록과 기주가 말한 날짜가 꼭 같은지는 아직 확인하지 않았다. “온새미에는 누가 갔습니까?”
“대신 갈 사람이 있다고 들었어요.”
기주는 ‘있다’라는 말을 천천히 다시 했다. “창구에서 종이를 접어 주던 사람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종이에 그 이름이 있는지는 묻지 않았어요. 내 표에 북쪽 도착 시각을 적느라 손이 바빴습니다.” 그는 창구의 창틀이 파랗게 칠해져 있었고 앞에 대기한 사람 둘이 있었다고 했다. 목소리와 자리를 기억하지만 그 직원의 이름표는 보지 못했다. 라온은 이름 대신 ‘서쪽 인력소의 파란 창구, 직원 미상’이라고 적었다. 이를 곧바로 명령자의 이름으로 바꿀 수는 없었다.
“봤어요?”
“못 봤습니다.” 기주는 라온을 똑바로 봤다. “내가 본 건 북쪽으로 바뀐 내 이동표와 여기 문지방이에요. 대체 인력이 온새미에 간다는 말은 인력소 창구에서 들었어요. 이름은 듣지 못했습니다.”
라온의 입에서 ‘그러면 왜 확인하지 않았냐’는 말이 튀어나왔다. 기주가 대답하기 전에 도윤이 종줄 반대편을 잡았다. “그때 너는 여기 와서 뭘 해야 했는데?” 그 말은 기주를 감싸려는 것처럼 들렸다. 라온은 도윤을 노려봤다. 도윤도 물러서지 않았다. 기주는 둘 사이에서 줄을 놓지 않았다. “이 종을 울려야 했어요. 온새미가 비는지 몰랐어요. 알았으면 창구로 돌아가 따졌겠죠. 하지만 그 말을 지금 하는 건 쉽습니다.”
기주가 종을 울렸다. 맞은편에서 답이 늦었다. 그는 라온의 질문을 끊고 바깥 난간으로 나갔다. 북쪽 집 하나의 연기 색이 평소보다 옅었다. 이든은 총을 만지지 않고 렌즈를 시온에게 넘겼다. 시온은 집 가까운 굽이를 보지 못한다고 말했다. 기주는 신호를 다시 보냈고, 잠시 뒤 낮은 종이 두 번 답했다. 방 안의 아이가 기침을 멈추자 해나는 물을 조금씩 먹였다. 현재의 일은 과거에 대한 말을 계속 끊었다. 라온은 그 일을 미워할 수 없었다.
라온이 종줄을 잠깐 맡겠다고 손을 내밀었다. 기주는 매듭을 가르쳐 줬지만 첫 울림은 짧게 끊겼다. 맞은편에서는 아무 답이 없었다. 두 번째에는 라온이 힘을 더 줘 종이 너무 오래 흔들렸다. 기주는 그의 손 위에 자기 손을 겹치지 않고 줄의 바깥을 잡아 소리를 멈췄다. “소리가 큰 것보다 간격이 맞아야 해요.” 라온은 그제야 기주가 이곳에서 매일 무엇을 배우고 있었는지 알았다. 온새미에 없는 종소리도, 이곳에 남은 종소리도 한 사람이 마음대로 바꿀 수 없었다.
기주는 벽에 건 자신의 이동표를 내려 주었다. 발행 날짜와 출발지가 남아 있었다. 표 뒷면에는 초소에 도착한 시각을 누리가 적어 확인한 작은 표시가 있었다. 온새미 대신 이곳에 있었다는 사실은 그 두 손글씨가 받쳤다. 그러나 누가 대체 인력을 실제로 보냈는지 보여 주는 칸은 없었다. 라온은 표를 가져가려다 기주의 손을 보았다. 종지기가 교대 이력을 증명할 유일한 원본을 잃으면 다음 배급 때도 곤란해진다.
“당신이 본 것과 들은 것을 따로 적겠습니다.” 라온이 말했다. 기주는 “내 말을 듣고 온새미 사람이 나를 원망해도 됩니다”라고 했다. “다만 내가 여기서 울린 종을 없었던 일로 쓰지는 말아 주세요.” 라온은 대답을 한참 골랐다. “그건 못 합니다. 서린에게도 두 사실을 같이 전하겠습니다.” 용서하겠다는 약속은 아니었다. 기주도 그런 약속을 요구하지 않았다.
해나는 기주의 손바닥을 다시 보려 했다. 그는 처음엔 괜찮다고 했지만 종줄에 피가 조금 묻어 있었다. 해나는 생기를 쓰면 빨리 아물 수 있다고 말했다. 기주는 지금 이 손으로 종을 더 쳐야 했다. 해나는 힘을 쓰기 전 상처를 씻고 마른 천으로 감싼 뒤, 다음 교대가 오면 손을 쉬라고 했다. 아이에게 필요한 치료와 기주의 손을 같은 생기에서 꺼내야 했기 때문이다. 기주는 그제야 다음 교대가 언제 오는지 누리에게 물어야겠다고 했다.
라온은 기주를 당장 데려가 증언시키자는 말을 삼켰다. 그가 자리를 뜨면 다음 울림의 간격은 누가 지킬까. 도윤은 기주의 이동표를 벽에 다시 걸어 주었다. 서로 다른 이유로 화가 난 두 사람은 같은 못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