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카리온

링워크 · 소설

《링워크》 1화 · 첫 선

하린은 작은 발을 뒤집어 손바닥에 올렸다. 고무 패드의 앞쪽 끝이 들떠 있었다. 손톱으로 누르면 붙는 척하다가 다시 벌어졌다.

“이걸로 그냥 뛰었으면?” 수경이 물었다.

“첫 번째 코너에서 미끄러졌겠죠.”

하린은 낡은 패드를 떼고 같은 규격의 새것을 맞췄다. 손가락으로 가장자리를 한 바퀴 누른 뒤, 두 발을 작업대에 세워 하중을 걸었다. 오른발이 더 이상 밀리지 않았다. 작업표의 마지막 칸에 완료 표시를 하고 기체를 주인에게 돌려줄 선반에 놓았다.

창밖으로 방파제 끝이 보였다. 공방 안으로 바닷바람이 들어올 때마다 창틀에 걸린 얇은 참가 안내지가 한 번씩 떨렸다. 안내지 아래에는 이름을 적지 않은 참가 의향서가 있었다. 하린이 일주일째 뒤집어 놓은 종이였다.

수경이 그 종이를 손끝으로 밀어 보였다.

“이제 네 것만 남았네.”

“끝났어요.” 하린은 방금 고친 기체를 가리켰다.

“그거 말고.”

하린은 대답 대신 진열장 앞에 섰다. 흰색과 파란색으로 나뉜 작은 인간형 한 대가 투명한 문 안에 있었다. 머리 양옆의 장식이 적고, 양팔을 내린 자세도 반듯했다. 누구나 쓸 수 있는 기본형이라 눈에 덜 띄었지만, 하린은 그 팔의 연결부가 마음에 들었다. 고장이 나도 어디부터 열어야 할지 보였다.

손가락으로 이름표를 한 번 짚었다. 카르덴.

하린은 한 번 손을 내렸다가 다시 유리 앞에 섰다. 지난달에는 견적서를 열어 보기도 전에 창을 닫았다. 이번에는 가격을 외우고 있었다. 연결부 규격, 가장 자주 닳는 발 패드의 재고, 무게가 조금 다른 팔을 끼웠을 때 늘어나는 회전 거리까지. 남의 기체라면 그 숫자들을 모두 말할 수 있었다. 자기 기체 앞에서는 처음으로 숫자 뒤의 장면이 보였다. 경기대에 세웠다가 패한 뒤, 고장 난 부분이 없는데도 케이스에 다시 넣어야 하는 장면이었다.

수경은 진열장 문을 열지 않았다. “지금 사면 오늘은 개봉 점검까지 할 수 있어. 경기 연습은 네가 정해.”

“안 사면요?”

“내일 또 와서 볼 수 있지.”

하린이 웃었다. 수경은 늘 그렇게 대답했다. 물건을 파는 사람이면서도 하린이 고르는 시간을 줄이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린은 오래 미뤄 둔 종이를 생각했다. 참가 의향서에 이름을 쓰지 못한 것은 기체가 없어서만이 아니었다. 출전할 수 있는 기체가 생기면 더는 준비 부족이라는 말을 앞에 놓을 수 없었다.

“이걸로 할게요.”

수경은 값을 다시 확인하게 하고 결제 내역을 하린 쪽으로 돌렸다. 하린이 지난 몇 달 동안 받은 수리비에서 따로 남겨 둔 금액이었다. 확인 버튼을 누르자 수경이 사각 보관 케이스를 꺼냈다. 뚜껑에는 같은 이름과 실물 번호가 적혀 있었다.

“진열된 애 대신 새 포장으로 줄게. 열어서 같이 보자.”

케이스 안에서 카르덴은 상하 완충재 사이에 누워 있었다. 하린은 몸통 아래로 손을 넣어 기체를 들어 올렸다. 길게 뻗은 다리 두 개가 손목 위에서 가볍게 흔들렸다. 작업대에 받침을 놓고 카르덴을 세우려다가 왼팔 연결부의 얇은 포장 보호편을 보았다.

“잠깐.”

그녀는 몸통을 한 손으로 받치고 다른 손으로 팔의 잠금쇠를 풀었다. 팔을 빼자 보호편이 연결 단자에 남았다. 끝을 집어 떼고 같은 팔을 다시 끼웠다. 힘을 조금 주자 낮은 소리와 함께 잠금쇠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당겨 봐.” 수경이 말했다.

하린이 팔을 살짝 당겼다. 빠지지 않았다. 반대쪽도 확인하고 나서야 전원을 넣었다. 파란 센서 눈이 켜졌다. 카르덴의 발 두 개가 작업대에 닿았고, 하린이 받치던 손을 천천히 뗐다.

한 대를 자기 손으로 고쳐 세우는 일과, 자기 것 한 대를 처음 세우는 일은 같지 않았다. 손을 떼는 순간의 망설임만 달랐다.

“한 걸음만.” 하린이 중얼거렸다.

엄지가 조종 스틱을 밀었다. 카르덴이 오른발을 떼고 앞으로 옮겼다. 상체가 작게 흔들렸다가 멈췄다. 하린은 스틱을 놓는 대신 조금 더 잡고 있었다. 두 번째 걸음이 길어졌다.

“조금만.”

이번에는 손을 일찍 뗐다. 카르덴이 짧게 발을 옮기고 바로 섰다.

“말을 듣는 건 스틱이지, 네 말은 아니야.”

경기대 건너편에서 다미가 말했다. 그녀는 초록색 기체의 발바닥을 천으로 닦고 있었다. 양옆으로 넓게 벌어진 발은 바닥을 붙잡는 데 좋아 보였다. 다미가 자기 기체 테르가드를 세워 놓고 저벽 모서리 앞에 얇은 지워지는 선을 그었다.

“나도 여기서 멈추는 연습 중이야. 한 판 해 볼래?”

하린은 참가 의향서 옆에 놓인 등록 카드를 보았다. 완성기 이름을 쓰는 칸이 둘이었다.

“대회는 두 대가 필요한데.”

“연습은 한 대면 돼.” 다미가 선을 다시 그으며 말했다. “나도 멈추는 거 확인해야 해.”

경기대는 공방 가운데 낮고 넓게 놓여 있었다. 바깥 경계선 너머에는 같은 높이의 안전 면이 이어졌다. 몸집 작은 기체가 선을 넘더라도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게 만든 부분이었다. 하린은 남쪽 조종대에 서서 세 표식을 찾았다. 가운데 A, 오른쪽 코너 안의 B, 왼쪽 C. 낮은 벽 몇 개가 직선 길을 끊었다.

다미가 연습 설정을 켰다. 먼저 밟는 표식마다 1점. 발이 완전히 선 밖으로 나간 뒤 1초 안에 돌아오지 못하면 점수와 관계없이 패배. 하린은 그것만 읽고 화면을 닫았다.

“준비됐어?”

“응.”

시작 신호가 짧게 울렸다. 테르가드가 다미의 정지선 쪽으로 몸을 틀었다. 하린은 카르덴을 곧장 중앙으로 보냈다. 처음에는 한 걸음씩, 낮은 벽 옆을 지날 때부터는 스틱을 조금 더 밀었다.

카르덴의 발이 A를 밟았다. 표식에 불이 들어왔다. 조종대의 작은 화면에 하린 1, 다미 0이 떴다.

하린은 짧게 웃었다. 실제 경기라면 첫 점수였다. 그 생각이 들자 오른쪽 B가 눈에 들어왔다. 테르가드는 코너 안쪽 통로로 향하고 있었지만 아직 B와는 떨어져 있었다.

“저것도 먼저.”

다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테르가드를 안쪽 길에 세우고 발을 한 번 고쳐 디뎠다. 하린은 B까지 남은 거리를 봤다. 경계선과 저벽 사이가 좁았다. 먼저 들어가면 표식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카르덴이 속도를 냈다. 그녀의 엄지가 스틱을 밀어 넣은 만큼 어깨가 앞으로 기울었다. B 앞까지는 빨랐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발을 표식 쪽으로 돌리려면 몸통이 먼저 안쪽으로 틀어져야 했다. 테르가드가 그 통로에 있었다. 부딪히지는 않았다. 다만 카르덴이 돌아설 만큼 넓지도 않았다.

“거기서 돌아설 수 있어?” 다미가 물었다.

하린은 멈추는 대신 한 번 더 앞으로 넣었다. B를 밟고 나서 방향을 바꿀 생각이었다.

카르덴의 바깥쪽 발바닥이 주황색 경계선을 완전히 넘어 같은 높이의 안전 면에 닿았다. 화면에 복귀 표시가 켜졌다. 하린은 반대쪽 스틱을 당겼다. 몸통은 돌아왔지만, 안쪽에 남은 발에 하중이 실려 바깥쪽 발이 제때 떨어지지 않았다.

삑.

기체가 안전 면에서 멈췄다. 화면의 점수는 여전히 1 대 0이었다. 그 아래에 더 큰 글씨가 떴다.

장외 · 다미 승

하린은 조종기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한 발을 옮기면 될 것 같았는데, 그 한 발을 옮길 자리를 들어갈 때 보지 않았다. 테르가드가 밀어낸 것도, 카르덴이 멋대로 간 것도 아니었다.

옆 작업대에서 누군가 공구함을 닫는 소리가 났다. 하린은 그 소리에야 경기대가 공방 한가운데 있다는 걸 다시 알았다. 다미 앞에서만 진 것이 아니었다. 수경이 볼 수 있었고, 입구를 지나던 사람도 보았을 것이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화면의 점수 1 대 0을 가렸다. 먼저 점수를 냈다는 사실이 자기 발을 선 안에 두는 데 아무 도움도 주지 못했다.

다미가 경기대 바깥 안전 면을 가리켰다. “여기 높이가 같아서 다행이야. 떨어진 건 아니니까.”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체가 부러졌다면 바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나사를 풀고 부품을 빼고 문제를 찾아내면 됐다. 지금은 카르덴을 집어 들기 전에 조종기에서 손을 떼는 것부터 해야 했다. 하린은 엄지를 펼쳤다 오므렸다. 방금 B 앞으로 밀어 넣을 때의 힘이 손끝에 남아 있었다.

다미가 먼저 경기대 전원을 연습 대기 상태로 돌렸다. 하린은 카르덴을 집어 들고 발목을 살폈다. 고무 패드도, 왼팔 잠금쇠도 정상이었다.

“어디 부러진 건 아니네.”

“응. 나도 처음에는 저 선 자꾸 넘었어.”

다미는 자기 노트를 펼쳤다. 정지선에서 길게 밀려 나간 옛 경로와, 오늘 짧게 멈춘 경로가 나란히 있었다. 그 옆에는 실패한 날짜가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하린은 자기 기록 화면을 열었다. 중앙 A에서 오른쪽으로 굽은 선이 B 앞에서 경계를 뚫고 나갔다. 기체의 반응 속도와 배터리 수치에는 이상 표시가 없었다. 하린은 B까지 이어진 선을 확대했다. 저벽이 시작되기 전에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만한 빈 곳이 있었다.

“여기서 한 번 멈췄어야 했네.”

“아니면 바깥으로 돌았어야지.” 다미는 노트를 덮었다. “난 내 선 한 번만 더 볼게.”

입구에서 시온이 들어왔다. 그는 두 사람의 경기대를 보고 하린이 들고 있는 패드를 흘깃 보았다.

“가운데는 먼저 잡았네.”

“그다음은 안 보고 갔어요.”

시온은 고개만 끄덕이고 자기 공구 상자를 열었다. 설명을 보태지 않는 편이 하린에게는 나았다. 패드 화면 아래에는 주행 기록 삭제 버튼이 있었다. 하린의 손가락이 그 위에서 멈췄다가 이름 칸으로 옮겨 갔다.

첫 선.

저장하자 주황색 주행선이 그대로 남았다.

수경이 경기대 옆 벽에 새 공고를 붙였다. 하린은 카르덴을 케이스에 넣기 전 잠깐 내려놓고 읽었다. 공방 시연기 세 대의 안전 점검. 전부 마치면 도약형 헬리안을 2주 동안 빌릴 수 있었다. 첫날 작업은 내일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할래?” 수경이 물었다.

하린은 점검 신청란에 이름을 썼다. 그 바로 아래, 다음 연습을 예약하는 칸에도 이름을 한 번 더 썼다.

“점검 끝나고 한 판 더요.”

다미가 코너 앞 정지선을 지우며 말했다. “내일은 네 것도 그어 봐.”

하린은 카르덴을 케이스에 눕히고 완충재가 양팔과 발을 제대로 잡는지 확인했다. 뚜껑을 닫기 전에 패드의 주행선을 다시 한 번 보았다. B 바로 앞, 들어갈 때는 보이지 않았던 빈 폭이 눈에 들어왔다.

《링워크》 1화 · 첫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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