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카리온

링워크 · 소설

《링워크》 5화 · 다미의 경기

다미는 그라벤의 오른발을 바닥에 한 번 눌러 보았다. 오전 등록 재검사에서는 양발 서기와 짧은 걸음이 모두 정상이었다. 지금도 제자리에서는 틀어진 곳이 보이지 않았다.

공방을 떠나기 전 그녀는 수리 장학 신청서의 빈 기록 칸을 봤다. 경기에서 이긴 횟수만 적는 칸이 아니었다. 어떤 고장을 어떻게 확인하고 고쳤는지, 다음에는 무엇을 다르게 검사할지도 써야 했다. 다미는 서류를 케이스 안쪽에 넣었다. 먼저 자기 경기를 해야 기록도 남는다.

그 서류를 처음 본 날, 다미는 수리 목록부터 채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공방에서 고친 기체는 많았다. 하지만 양식의 다음 줄에는 자신이 확인한 결과를 쓰게 되어 있었다. 어떤 부품을 바꾸었는지 아는 것과, 그 기체가 실제 경기에서 다시 같은 동작을 버티는지 보는 일은 달랐다. 하린의 카르덴을 봐 주고 루안의 베르칸 흠집을 만져 본 손으로 오늘은 자기 그라벤을 움직여야 했다.

수경이 문 앞에서 작은 부품함을 건넸다. “어제 챙겨 둔 것 맞지?”

“네. 발목 연결부 같은 규격으로요.”

“쓸 일 없으면 그게 제일 좋고.”

다미는 부품함을 케이스 손잡이 옆에 끼웠다. 쓸 일이 없을 거라고 믿고 싶어서가 아니라, 필요할 때 허둥대지 않으려고 준비한 것이었다. 수경은 그 말을 굳이 하지 않았다. 공방 문을 나서는 다미에게 “네 경기 잘 보고 올게”라고만 했다.

맞은편에서 도경이 벨릭스를 세웠다. 청색 포인트가 빠른 다리의 앞면을 따라 들어가 있었다. 도경은 조종기를 잡고도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나후가 시작 신호를 보낼 때까지 표식이 꺼진 경기대만 보고 있었다.

“준비됐습니까?” 나후가 물었다.

다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첫 라운드가 시작되자 벨릭스는 중앙 A로 짧게 파고들었다. 그라벤은 발을 단단히 딛고 움직였지만 출발이 늦었다. 도경의 발이 A를 먼저 밟았다.

다미는 오른쪽 B로 향했다. 그라벤은 저벽 앞에서 몸을 낮게 돌렸다. 이 기체가 잘하는 동작이었다. 그런데 오른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 발목이 안쪽으로 조금 헛돌았다. 다미는 스틱을 줄였다. 더 밀면 설 수는 있겠지만 다음 방향을 예측할 수 없었다.

도경의 벨릭스가 B에 먼저 닿았다. 점수는 다미 0, 도경 2. 남은 시간 동안 다미는 그라벤을 안전하게 움직여 돌아왔지만 표식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첫 라운드가 끝났다.

다미는 종료 직후에도 조종기를 내려놓지 않았다. 기체의 오른발이 한 번 더 안쪽으로 흐를까 봐, 다음 한 걸음을 미리 잡아 두고 싶었다. 그러나 경기는 멈췄다. 지금 확인해야 할 것은 점수를 잃은 이유가 도경의 빠른 기체 때문인지, 자신의 조종인지, 연결부의 실제 유격인지였다. 그녀는 마지막 두 걸음의 기록을 되돌렸다. 같은 명령을 넣었는데 오른발의 접지 각도가 달랐다. 화면만으로 원인을 확정할 수는 없어 직접 눌러 보기로 했다.

도경은 벨릭스를 회수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미는 그라벤을 받침에 세워 오른쪽 발목을 다시 눌렀다. 제자리에서는 잡혔다. 조금 몸을 기울여 하중을 주자 연결부가 아주 작게 벌어졌다.

그녀가 손을 들었다.

“오른쪽 발목 연결부 수리 신청할게요.”

나후가 라운드 사이 수리 시간을 열기 전에 그라벤을 확인했다. 다미는 고장이 난 부위를 가리켰다. 나후는 등록된 부품과 같은 규격의 교체품을 보인 뒤 시간을 재기 시작했다.

“라운드 사이 수리 한 번입니다. 부하 시험까지 포함해서 4분.”

타이머가 켜지자 다미는 객석 쪽을 보지 않았다. 하린이 도와줄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후에게 신고한 사람도, 부품을 고르고 시험 결과를 책임질 사람도 자신이었다. 그녀는 부품함을 열기 전에 연결부 바깥쪽의 작은 흠집을 손톱으로 짚었다. 흠집은 수리 전 위치를 알려 주는 표식이 될 수 있었다. 처음부터 전부 풀면 빠르겠지만, 어떤 면이 벌어졌는지 놓칠 수 있었다.

“남은 시간 3분.” 나후가 말했다.

다미는 고개만 끄덕였다. 급한 손은 나사를 비스듬히 물렸다. 공방에서 여러 번 봤던 실패였다. 그녀는 연결부를 똑바로 맞추는 데 몇 초를 더 썼다. 부품이 들어가는 소리가 작게 났다. 그 소리가 정확히 들린 다음에야 다음 나사를 집었다.

다미는 준비한 작은 부품함을 열었다. 앞에 앉은 하린이 일어나려다 멈췄다. 여기서 조립하는 사람은 다미였다. 다미가 오른쪽 발목의 연결 부품을 빼고 같은 규격 새것을 끼웠다. 나후가 부품 표시를 대조했다. 성능을 올리는 부품도, 다른 각도로 움직이게 만드는 개조도 아니었다.

손끝이 빨라지자 다미는 잠깐 멈춰 부품을 다시 봤다. 서두른다고 시간이 늘어나지 않았다. 맞는 부품을 끝까지 잠그고 시험할 시간을 남겨야 했다. 부품함 뚜껑 안쪽에는 그녀가 전날 써 둔 분해 순서가 있었다. 그 순서대로 나사를 다시 확인했다.

다미는 양발을 경기장 옆 시험대에 올렸다. 마지막 삼십 초 동안 정해진 하중을 걸고 걷기와 멈추기를 반복했다. 아까 안쪽으로 흐르던 오른발이 이번에는 왼발과 나란히 섰다. 나후가 시험 결과를 확인했다. 수리 시작부터 승인까지 세 분 반. 허용된 시간 안이었다.

두 번째 라운드는 다른 기체를 써야 했다. 그라벤을 고쳤다고 다시 바로 내보낼 수는 없었다. 다미는 테르가드를 세웠다. 도경은 선회형 카이런을 꺼냈다. 루안이 오전에 쓴 기체와 계열 이름은 같았지만 별도 실물이었다.

출발 뒤 테르가드가 중앙 A를 먼저 밟았다. 도경의 카이런은 안쪽 저벽을 돌아 오른쪽 B를 가져갔다. 1 대 1. 다미는 카이런의 허리 회전을 따라 하지 않았다. 테르가드를 낮게 옆으로 옮겨 왼쪽 C에 접근했다. 바닥을 넓게 잡은 발이 한 번 미끄러지려다 다시 붙었다. 마지막까지 남겨 둔 표식 C를 다미가 먼저 밟았다.

2 대 1. 라운드 전적은 1 대 1이 됐다.

“발은 괜찮나.” 도경이 그라벤의 케이스를 보며 물었다.

“다시 검사받았어요.”

“그럼 보여 줘.”

도경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다미도 더 설명하지 않았다. 나후에게 확인받은 수리 기록은 경기대 옆에 남아 있었다.

세 번째 라운드에 도경은 다시 벨릭스를, 다미는 그라벤을 골랐다. 표식 A, B, C의 불이 전부 꺼졌다. 앞선 라운드 점수는 여기로 넘어오지 않았다.

도경이 또 중앙 A로 들어갔다. 이번에도 빠른 쪽은 벨릭스였다. A가 먼저 청색으로 켜졌다. 다미는 그라벤을 A 쪽으로 억지로 돌리지 않았다. 이미 점수가 난 표식을 다시 밟아도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오른쪽 B로 가서 발을 정확히 멈췄다. 다미 1, 도경 1.

도경은 그라벤이 다음에 왼쪽 C로 갈 것이라고 본 듯 벨릭스를 그쪽 통로로 옮겼다. 그라벤의 출발은 느렸지만, 다미는 이미 멈춘 자리에서 바로 움직일 수 있었다. 도경이 C 앞의 길을 확보하는 사이, 다미는 저벽을 끼고 벨릭스의 뒤편으로 돌아갔다.

벨릭스의 등에는 공통 규격의 접촉 패드가 드러나 있었다. 그라벤이 한 걸음 더 다가갔다. 밀어 넘어뜨릴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다미는 손만 뻗었다.

짧은 신호음이 울렸다. 그라벤의 손이 도경 기체의 후면 패드에 닿았다. 다미에게 1점이 더해졌다. 2 대 1. 거의 곧바로 라운드 종료음이 울렸다. C는 끝까지 누구의 색도 되지 않았다.

경기 전적 2 대 1, 다미가 8강에 올랐다.

하린은 경기대 밖에서 다미에게 엄지를 들었다. 다미는 그라벤을 먼저 회수했다. 오른발을 다시 눌러 보고, 케이스 안쪽 수리 칸에 교체한 부품의 번호를 적었다. 그다음에 경기 기록 옆에 자기 손으로 한 줄을 더했다.

오른쪽 발목 연결부 교체. 하중 시험 통과. 다음 조립 때는 서기만 보지 말고 방향 전환까지 검사할 것.

“축하해.” 하린이 옆에 왔다.

“응.” 다미는 펜 뚜껑을 닫았다. “수리한 것도 기록했어.”

“알아. 내가 보고 있었어.”

다미는 그제야 웃었다. 멀리 대진판에서 두 사람의 이름이 각각 다음 칸으로 옮겨졌다. 공방에 돌아가면 오늘 맡긴 수리 의뢰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다미는 그중 한 건을 수경에게 넘길 생각이었다. 다음 경기는 자기 이름으로 뛰어야 하니까.

도경이 자기 벨릭스를 회수하고 옆을 지나갔다. “신고한 거 잘했어.”

다미는 그 말에 쉽게 고맙다고 하지 못했다. 고장이 없었다면 더 빨리 달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신고로 시간을 썼고, 수리 과정은 모두가 봤다. 그래도 문제를 숨긴 채 2라운드에 들어갔다면 자신의 발과 상대의 기체를 모두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다음엔 경기 전에 방향 전환까지 검사할게요.”

“그래도 경기 중에 생기는 건 있어.”

도경이 케이스를 들고 떠났다. 다미는 그 말이 위로인지 사실인지 잠깐 생각했다. 둘 다였다. 기록에는 완벽한 정비를 약속하는 문장이 아니라, 다음에 더 일찍 발견할 방법을 적어야 했다. 그녀는 신청서에 빈 줄을 하나 남겨 뒀다. 앞으로 치를 경기가 더 있었다.

《링워크》 5화 · 다미의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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