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미는 테르가드의 발을 닦다가 천을 내려놓았다. 왼쪽 발바닥의 바깥 고무가 조금 얇아져 있었다. 손끝으로 눌러 보니 한쪽만 먼저 바닥에 닿았다.
“어제 여기서 계속 돌았더니.” 다미가 공방 바닥에 그어 둔 정지선을 턱으로 가리켰다.
하린은 두 개의 케이스를 들고 문 앞에 서 있었다. 하나에는 카르덴이, 다른 하나에는 어제부터 빌린 헬리안이 들어 있었다. 오늘 두 대의 조합을 검사받고 등록을 마쳐야 했다. 본선은 내일이었다.
“같은 규격 패드 있어?” 하린이 물었다.
“서랍 두 번째.”
하린은 케이스를 작업대 아래에 내려놓고 패드를 찾았다. 다미가 테르가드의 발을 받치는 동안 닳은 고무를 떼었다. 새것을 붙이고 가장자리를 함께 눌렀다. 테르가드를 세워 하중을 걸자 두 발이 고르게 닿았다.
“됐어.” 다미가 말했다.
그때 공방 앞 선반에서 호출등이 켜졌다. 동네 우편점에서 맡긴 팔 연결부 수리가 도착했다는 표시였다. 하린은 손을 씻고 그쪽으로 가려 했다. 다미가 먼저 일어나 호출표를 가져왔다.
“이건 내가 볼게. 넌 등록 검사부터 해.”
“금방 끝날 것 같은데.”
“네 것도 금방이라고 하다가 늘 밀려.”
하린은 케이스 두 개를 보았다. 테르가드의 발 패드를 고치는 건 자기 손으로 끝낼 수 있었지만, 다미가 맡은 일을 또 가져올 이유는 없었다. 다미는 자기 것도 고치고, 남의 것도 고치고, 경기까지 뛰려 했다. 하린이 그 일을 전부 덜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 이거 끝나면 네 연습 시간 비워 둬.”
“이미 적어 놨어.”
다미의 노트에는 오늘 해야 할 일들이 시간 순서로 적혀 있었다. 테르가드 발 패드 교환, 그라벤 방향 전환 시험, 공방 의뢰품 포장. 그 사이에 자기 연습 서른 분이 작은 네모로 그려져 있었다. 하린은 그 네모를 보고 웃다가 멈췄다. 다미가 자기 시간을 눈에 보이게 써 놓지 않으면 다른 일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뜻이었다.
“내가 포장할게.” 하린이 말했다.
“그건 수경 선생님께 부탁할 거야. 너는 네 검사 가.”
“같이 하면 빨리 끝나잖아.”
다미는 닳은 고무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돌아왔다. “빨리 끝나는 사람이 네 일까지 맡으면, 다음에는 네가 또 남의 일부터 보게 돼. 오늘은 서로 자기 걸 먼저 하자.”
하린은 두 케이스의 손잡이를 잡았다. 다미 말이 맞다고 인정하는 것보다, 공방을 나서는 것이 더 어려웠다. 두 사람이 함께 일하면 대부분의 문제를 곧장 해결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함께 있으면 각자의 경기 준비도 함께 된다고 착각하기 쉬웠다. 그녀는 문을 열고 자기 등록 차례를 확인하러 갔다.
다미가 작업대 옆 일정표를 보여 줬다. 우편점 수리 아래에 자기 이름으로 삼십 분이 잡혀 있었다. 하린은 웃으며 시험대로 갔다.
카르덴의 기본 팔을 빼고 길이가 조금 더 긴 시험용 팔을 끼웠다. 연결 규격은 같았다. 몸통이 이를 받아들이는지는 별도였다. 하린은 등 뒤의 접촉 패드가 붙은 시험판을 벽 끝에 세웠다. 기체를 돌려 팔을 뻗자, 원래 팔로는 한 걸음 더 가야 할 거리에 손이 닿았다.
“거리 좋아 보이는데?” 옆에서 루안이 말했다.
하린은 긴 팔을 단 카르덴을 저벽 앞에 세웠다. 손끝은 원래보다 먼저 벽 너머에 닿았다. 빈 기체 하나를 뒤에 세워 후면 패드까지의 거리를 시험하자 팔을 뻗는 동작은 분명 쉬워졌다. 그러나 몸통이 앞으로 쏠릴 때 발끝이 미세하게 들렸다. 하린은 조종기를 놓았다가 다시 쥐었다. 단순히 한 발을 더 내딛으면 균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문제는 실제 경기의 좁은 길에서 그 한 발을 어디에 놓느냐였다.
루안이 말했다. “그 정도면 태그 한 번은 빠르게 하겠는데.”
“태그하고 나서?”
“뭐, 다음 점수로.”
하린은 고개를 저었다. 손끝만 빨라지는 장치는 없었다. 긴 팔은 몸의 일부였고, 몸이 돌아야 할 폭도 함께 바뀌었다. 그녀는 같은 동작을 원래 팔로 한 번 더 시험했다. 태그 거리는 짧았지만 발은 선 안에 남았다. 기록 화면에 두 경로를 겹쳐 두고 자신이 어떤 불편을 감당할지 보았다.
그는 자기 기체 두 대의 케이스를 끌고 들어오던 참이었다. 하린은 대답 대신 카르덴을 제자리에서 돌렸다. 팔이 뻗은 쪽으로 상체가 먼저 따라갔다. 발은 돌아가려 했지만 몸이 조금 더 밀렸다. 첫 시도에서는 다시 세웠다. 두 번째에는 출발점을 뒤로 물려 시험했다. 손이 닿는 거리는 늘었고, 돌아설 때 필요한 폭도 늘었다.
하린은 경기대의 저벽과 경계선을 바라보았다. 어제 카르덴으로 연습한 B 앞의 폭을 머릿속으로 겹쳐 보았다. 그곳에는 길어진 팔만큼 비워 둘 자리가 없었다.
“기본 팔로 할게.”
“아깝지 않아?” 루안이 물었다.
“닿고 나서 못 돌아서면 더 아깝지.”
하린은 시험용 팔을 빼고 원래 팔을 끼웠다. 연결부가 잠기는 소리를 듣고 두 번 가볍게 당겼다. 카르덴의 발바닥 패드도 닳은 부분만 같은 규격 새것으로 바꿨다. 긴 팔은 등록하지 않은 조합, 발 패드 교환은 성능을 바꾸지 않은 정비로 기록했다.
헬리안은 다른 받침에 세웠다. 하린이 낮은 벽 앞에서 다리를 굽혔다 펴자 기체가 벽을 넘었다. 착지 뒤 바로 다음 걸음을 넣지 않았다. 발이 자리를 잡는 순간을 보고 스틱을 밀었다. 배터리 기록의 끝에 작은 여유가 남았다. 시온과 연습할 때보다 속도는 느렸지만, 방향을 다시 고를 수 있었다.
“그걸로 등록해?” 루안이 물었다.
“응. 공방 대여 계약도 가져왔어.”
“난 두 번째가 이거.” 루안은 붉은 포인트가 들어간 카이런의 케이스를 열었다. 그 옆에는 길게 뻗은 자주색 다리의 베르칸이 있었다. 같은 크기대의 인간형이지만 서 있는 자세부터 달랐다. “베르칸은 빨리 들어가고, 카이런은 나오는 데 써.”
“네가 늘 못 나오니까?”
루안의 카이런이 등록대 위에서 허리를 한 번 틀었다. 옆의 베르칸은 반대로 곧장 앞으로 나갈 듯 서 있었다. 하린은 같은 사람이 두 기체를 쓰더라도 조종 습관이 따라가겠다고 생각했다. 내일 둘이 마주하면 루안은 베르칸으로 먼저 들어갈 것이고, 카이런으로는 더 짧게 돌아나올 수 있을 것이다. 카르덴과 헬리안의 차이를 아는 것만으로 상대를 아는 것은 아니었다.
“내일 먼저 보여 줘.” 하린이 말했다.
“그러지. 너도 빌린 녀석 한번 제대로 써 봐.”
하린은 ‘빌린’이라는 말에 잠깐 케이스 손잡이를 봤다. 헬리안의 소유자는 공방이지만, 경기 중 선택하고 책임지는 사람은 자신이었다. 대여 계약서는 핑계가 아니었다.
“오늘은 경기 전날이니까 그런 말 안 듣는다.”
루안은 웃으며 두 실물 번호가 적힌 카드를 들었다. 하린도 자기 카드에 카르덴과 헬리안의 번호를 옮겨 적었다. 헬리안의 소유자는 공방, 대회 중 사용자는 하린이라고 따로 적었다.
등록대에는 심판 임나후가 있었다. 나후는 한 사람당 완성기 두 대를 확인하고, 각 기체의 몸통·좌우 팔·양다리 세트·백팩 조합을 기록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라운드에는 서로 다른 기체를 쓰고, 세 번째에는 등록한 둘 중 한 대를 다시 고를 수 있다고 짧게 안내했다.
“경기 중에 팔을 길게 바꾸면요?” 하린이 물었다.
“등록한 조합이 아니면 안 됩니다.” 나후가 말했다. “고장 나서 같은 규격 부품으로 수리할 때도 먼저 신고해 주세요. 확인하고 다시 검사합니다.”
하린은 시험용 팔을 빼 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성능을 올리는 선택과 고장을 고치는 일을 같은 칸에 적을 수는 없었다.
다미가 뒤늦게 등록대로 왔다. 작업복 소매를 걷은 팔에 기름 자국이 있었다. 테르가드와 낮은 중심의 그라벤을 각각 케이스에서 꺼냈다. 나후가 테르가드의 새 발 패드를 확인하고 기록했다. 그라벤은 양발로 서서 짧은 검사 동작을 통과했다. 다미는 자기 이름 옆에 두 실물 번호가 붙는 것을 끝까지 보고 나서야 펜을 놓았다.
도경도 줄 끝에서 기체 두 대를 들고 있었다. 선명한 청색 포인트의 벨릭스와 붉은 선회형 카이런. 루안이 자기 카이런을 돌아보자 도경이 말했다.
“이름이 같아도 네 건 네 거야.”
“알아요. 번호까지 다른데.”
도경은 대답 없이 자기 실물 번호를 나후에게 보여 줬다. 같은 계열을 쓴다고 같은 기계나 같은 조종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등록이 끝나자 공방 게시판에 내일 첫 대진이 붙었다. 하린의 상대는 루안이었다. 루안이 하린의 카드를 한 번 보고 자기 카드를 내려다봤다. 둘 다 방금 전까지 같은 시험대에서 기체를 세우고 있었는데, 내일은 경기대의 양쪽에 선다.
“나 봐주지 마.” 루안이 말했다.
“네가 먼저 그러지 마.”
말을 하고 나니 하린은 자신이 어제처럼 상대를 앞질러 들어갈 생각부터 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녀는 카드 뒤쪽에 작은 표시를 했다. 돌아설 자리.
다미가 일정표에 적어 둔 자기 연습 시간은 아직 남아 있었다. 그녀는 우편점 기체의 수리를 끝낸 뒤 테르가드를 케이스에서 꺼냈다. 하린은 옆 경기대를 치우고 물러났다. 이번에는 다미가 먼저 자기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