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카리온

링워크 · 소설

《링워크》 7화 · 멈추는 사람

다미는 그라벤의 발을 손끝으로 밀었다. 오른발 연결부는 움직이지 않았다. 본선 첫날 도경전에서 교체한 것과 같은 규격의 부품이었다. 사용 전 검사표에도 정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라운드가 시작되기 전부터 다미는 자꾸 그곳을 봤다.

“발목 괜찮아요?” 나후가 물었다.

“괜찮습니다. 부하 시험도 통과했어요.”

나후는 점검표에 서명했다. 그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정상이라는 말은 아픈 기억까지 지워 주지 않았다. 다미는 기체를 출발선에 세우고 맞은편을 보았다. 신태록의 그라벤이 그녀의 것과 거의 같은 폭으로 서 있었다. 두 기체는 같은 계열이지만 다른 소유자의 다른 실물이었다. 태록의 손은 조종기 위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들어올 때보다 멈출 때 보라고 들었어요.” 다미가 말했다.

“누가요?”

“어제 당신 경기 본 사람들이요.”

태록은 웃지도 않았다. “그럼 오늘은 출발을 봐요.”

첫 라운드가 시작됐다. 그라벤 둘은 빠르지 않았다. 태록은 출발부터 짧은 보폭으로 중앙 A에 들어갔다. 다미는 오른쪽 B를 먼저 노릴까 하다가 그를 따라 중앙으로 방향을 틀었다. 태록의 발이 A를 밟은 때가 17초. 다미는 한 걸음 늦었다.

그녀는 곧바로 왼쪽 C로 갔다. 31초에 C를 선점했다. 점수는 같았다. 다미의 눈은 태록의 발 끝에 있었다. 태록은 벽을 돌아 B로 가다가 두 번 멈췄다. 첫 번째는 방향을 바꾸기 전, 두 번째는 저벽을 빠져나온 후. 다미는 그 사이에 통로를 가로지르면 먼저 B에 닿겠다고 생각했다. 스틱을 길게 밀었다.

그라벤의 발목은 정상으로 반응했다. 문제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더 급하게 움직였다. 첫 정지선에서는 정확히 멈췄다. 다음 코너에서 몸을 돌릴 때 한 발의 위치가 바깥쪽으로 벌어졌다. 고장이 아니었다. 다미가 그 각도를 입력한 것이다. 다시 줄이고 돌아오자 태록은 이미 서 있었다. 그는 발끝을 B 안에 올려놓고 움직이지 않았다. 79초, 태록 2 대 다미 1.

종료음 뒤 다미는 먼저 그라벤의 오른발을 들어 봤다. 태록이 손을 뻗는 걸 보고 그녀는 기체를 내려놓았다.

“고장 났나요?” 그가 물었다.

“아니요.” 다미가 답했다. “제 손이 먼저 갔어요.”

태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미는 그가 멈출 때마다 자신도 무언가 서둘러야 한다고 여긴 순간을 떠올렸다. 상대의 느린 박자에 끌려간 것이었다. 태록은 자기가 느리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두 번째 라운드에는 다른 등록 기체를 써야 했다. 다미는 테르가드를 꺼냈다. 태록은 자기 오르덱스를 세웠다. 다미는 넓은 발바닥 아래로 손가락을 넣어 균형을 확인했다. 공방에서 여러 번 그었던 정지선이 생각났다. 처음에는 그것을 넘고, 나중에는 앞에서 멈추고, 어제는 목표선 위에 발을 놓았다. 연습 기록에는 실패한 날짜도 그대로 있었다.

시작 신호와 함께 다미는 중앙을 비웠다. 태록이 허리 회전으로 A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걸 알았지만, 테르가드의 발을 그와 같은 좁은 길에 넣지 않았다. 왼쪽 C까지 넓게 열린 바닥이 있었다. 다미는 18초에 C를 밟았다. 태록의 오르덱스는 36초에 A를 가져갔다. 1 대 1.

남은 B는 코너 안쪽이었다. 태록은 가장 짧은 진입선 앞에 멈췄다. 다미는 그가 다시 정확히 멈출 것을 알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 정지에 반응하지 않았다. 저벽 바깥에 짧게 서서 발의 방향을 바꿨다. 테르가드의 앞쪽 발이 B를 향했고, 뒤쪽 발은 아직 넓은 공간에 남았다.

태록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미도 움직였다. 손가락 한 마디 거리 앞에서 테르가드의 발이 먼저 멈췄다. 74초에 B가 다미의 색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더 전진하지 않고 바깥에 남긴 발을 안으로 끌어들였다. 종료. 라운드 2 대 1, 경기 전적 1 대 1.

“아까랑 같은 코너죠?” 태록이 말했다.

“같은 코너. 다른 출발점이요.”

그는 테르가드가 멈춘 위치를 봤다. 다미는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한 라운드를 이겼다고 해서 조종법을 남에게 가르칠 만큼 알게 된 건 아니었다. 자기가 왜 그 길을 골랐는지는 말할 수 있었다.

마지막 라운드에서는 둘 다 그라벤을 다시 세웠다. 표식 A, B, C가 모두 꺼졌다. 수리한 발목은 여전히 정상. 다미는 그것을 화면에서 확인하고 더 보지 않았다. 태록의 기체보다 자신의 기체가 갑자기 빨라지지는 않았다. 대신 시작할 시점을 정해 두었다.

시작. 태록은 중앙 A 앞의 직선에 들어섰다. 다미는 오른쪽 B로 향하다 저벽 모서리에서 짧게 멈췄다. 태록이 A를 향해 몸을 틀 때 B 쪽 길이 열렸다. 다미가 먼저 표식 위에 섰다. 22초, 다미 1점. 태록이 A를 선점한 것은 44초였다. 다시 1 대 1.

다미는 태록이 다음에 무엇을 할지 짐작했다. 그는 C 입구까지 가서 정확히 멈추려 할 것이다. 다미가 그 길로 먼저 서둘러 들어가면 앞선 라운드의 자신처럼 발을 크게 벌리고 돌아와야 한다. 그녀는 C와 멀어지는 쪽으로 한 걸음 물렸다. 관객석에서 보면 포기처럼 보일 만한 움직임이었다. 하린이 난간 앞에서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그 한 걸음으로 그라벤의 몸통이 저벽과 평행이 됐다. 다미는 바깥쪽 여유 면을 보지 않아도 두 발이 선 안에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태록이 C 앞에 멈추려는 순간, 다미는 벽 끝을 돌아 나왔다. 태록이 예상한 것은 뒤에서 빠르게 따라붙는 기체였다. 옆쪽에서 이미 방향을 맞추고 있던 기체는 아니었다.

84초에 다미의 그라벤이 C를 먼저 밟았다. 종료음이 울리자 다미는 조종기를 놓았다. 그녀는 태록의 발을 보려다가 자기 기체의 발을 먼저 보았다. 오른쪽 발목은 정지 자세에서도 흐르지 않았다. 검사표에 있던 정상이라는 말과 지금 눈앞의 정지가 비로소 같은 뜻이 됐다.

“2 대 1. 서다미 선수 4강 진출.” 나후가 결과를 읽었다.

태록이 다가왔다. “두 번째 라운드부터 제 정지에 안 들어오더군요.”

“첫 번째엔 들어갔어요.”

“알아요.” 그가 손을 내밀었다. “그 뒤에는 자기 자리에서 기다렸죠.”

다미는 악수를 했다. 그 말이 괜히 좋았다. 남의 속도에 맞추지 않고도 경기는 끝낼 수 있었다.

통로에서 하린을 만났을 때 다미는 먼저 물었다. “너 이겼다며.”

“응. 네 마지막 라운드 봤어. 일부러 한 걸음 뺐지?”

“응. 그걸 안 빼면 돌아설 때 너무 붙어.”

둘은 잠깐 말이 없었다. 서로가 배운 말을 대신 결론 내리는 사이가 아니었다. 하린은 다미의 케이스 손잡이를 잡아 주려다가 다미가 이미 단단히 쥔 것을 보고 손을 거뒀다.

대진판에는 시온과 김노을의 이름도 다음 칸으로 옮겨져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각자의 8강을 통과했다. 다미는 노을의 공개 관전 기록을 떠올렸다. 노을은 다른 선수의 실수를 메모하는 사람으로 알려졌지만, 그 메모가 무엇을 숨기고 무엇을 보여 주는지는 아직 몰랐다.

다음 날 공방에서 수경은 새 수리 의뢰를 세 건 내밀었다. 다미는 평소처럼 전부 받아 들려다가 종이를 내려놓았다.

“이건 선생님께 부탁드려도 될까요? 저 30분은 경기 연습해야 해요.”

수경은 종이를 다시 봤다. 급한 작업은 아니었다. “그래. 그 시간은 네 걸로 해.”

다미는 공방 일정표에 자기 이름을 적었다. 시간 칸이 작아 글자가 눌렸다. 그 옆에 16강 때 직접 적은 수리 기록이 있었다. 오른발 연결부를 바꾸고, 하중 시험을 통과했고, 다음에는 방향 전환까지 검사하겠다고 써 놓은 문장. 오늘의 승리는 그 문장 뒤에 생긴 새 칸 같았다. 그녀는 노트를 펼쳐 태록전의 마지막 정지 위치를 그렸다. 표식까지 가는 선과 돌아 나오는 선이 처음으로 같은 종이 위에서 이어졌다.

《링워크》 7화 · 멈추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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