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카리온

링워크 · 소설

《링워크》 8화 · 허용된 길

하린은 공방이 문을 열기 전 시온에게 배웠던 첫 조종을 떠올렸다. 발을 조금 옮기고 손을 떼라는 말이었다. 그때는 기체를 계속 움직여야 좋은 줄 알았다. 시온은 그녀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대신 정해 주지 않았다. 기체가 자기 무게를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리는 법만 보여 줬다.

이제 그와 같은 경기대 앞에 섰다. 등록 검사대에서는 카르덴의 양팔을 당기고, 헬리안의 다리와 백팩 잠금 상태를 확인했다. 어제 연습에서 바꾼 경로는 허용되지만, 등록 뒤 성능 조합을 새로 바꿀 수는 없었다. 하린은 검사표에 서명하면서 시온의 케이스를 봤다. 그 안에 오르덱스와 별도 실물 그라벤이 있었다. 2화 연습에 쓰던 오르덱스는 회청색 몸통 옆의 작은 흠집까지 같았다.

“그때 헬리안으로 날아오던 길.” 시온이 말했다. “오늘도 열어 둘 거야.”

“열어 두면 들어가야 해요?”

“그건 네가 정해.”

하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시온이 선생님처럼 말한다고 해서 경기에서 선생님 역할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그의 말은 제안이라기보다, 그녀가 어디로 갈지 보겠다는 예고 같았다.

첫 라운드에 하린은 카르덴을, 시온은 오르덱스를 세웠다. 중앙 A 앞의 낮은 벽이 두 사람 사이에 놓였다. 시온은 출발하자마자 허리를 틀어 그 벽을 끼고 돌았다. 18초에 A가 시온의 색으로 켜졌다. 하린은 B로 빠져 40초에 한 점을 가져왔다. 1 대 1. 테두리의 작은 전광판보다 경기면이 더 밝게 보였다.

시온은 C로 가는 안쪽 길을 비워 뒀다. 하린은 그가 놓친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B에서 C로 이어지는 짧은 선에는 카르덴 한 대가 겨우 돌아설 폭밖에 없었다. 바깥길을 고르면 늦는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시온의 오르덱스가 허리를 한 번 틀어 앞을 가로막을 수 있다. 하린은 넓은 길을 택했다.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너무 늦게 택했다. 77초, C는 시온이 먼저 밟았다. 첫 라운드 1 대 2.

카르덴을 회수할 때 하린은 손목 붕대가 조종기에 살짝 걸린 것을 떼었다. 탓할 만한 영향은 아니었다. 그녀가 넓은 길을 고르기 전에 안쪽 길을 오래 바라본 시간이 문제였다. 시온은 그런 시간을 뺏는 사람처럼 경기했다. 하린은 주행 기록을 저장하고 화면에 자신이 멈춘 지점을 표시했다.

두 번째 라운드는 헬리안과 시온의 그라벤이었다. 하린은 기체를 세운 뒤 낮은 벽의 다른 쪽을 봤다. 이번에는 시온이 빠르게 방향을 바꾸는 기체를 쓰지 않는다. 대신 한 번 자리를 잡으면 밀리지 않는 정지형이었다. 같은 길을 그대로 쓸 이유도 없었다.

출발하자 헬리안이 B 앞의 벽을 넘었다. 하린은 가장 가까운 표식에 기체를 억지로 착지시키지 않았다. 한 걸음 걸어 들어갈 수 있는 넓은 면에 내려놓고 B를 밟았다. 16초, 하린 1점. 그라벤은 38초에 A를 가져갔다. 시온은 처음 라운드처럼 서둘러 하린의 앞을 막지 않았다. 그가 멈춰 있는 자세 자체가 통로 하나를 닫았다.

하린은 잔량을 확인했다. 벽을 한 번 더 넘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착지한 뒤 C 앞에서 돌아서려면 평지 걸음도 남겨야 했다. 시온은 그녀가 뛰는 순간을 기다릴 것이다. 하린은 그라벤이 서 있는 길에서 멀어졌다. 둘러가는 동안 화면의 시간이 줄어들었다. 헬리안의 오른발은 가벼웠지만, 하린의 엄지는 조심스러웠다.

시온이 A 앞에서 몸을 다시 틀었다. 하린은 그 움직임을 보고서야 점프 버튼을 눌렀다. 기체가 벽을 넘고 넓은 면에 착지했다. 시온이 가로막으려면 그라벤을 먼저 빼야 했다. 짧은 빈 사이에 헬리안이 C를 밟았다. 73초. 2 대 1, 두 번째 라운드를 이겼다.

“먼저 안 뛰더라.” 시온이 말했다.

“뛰고 나서 설 자리가 생길 때까지요.”

“그럼 다음엔 그 자리를 먼저 막아야겠네.”

그는 진지하게 자기 기체를 케이스에 넣었다. 하린은 그가 칭찬하지 않은 것이 좋았다. 다음 라운드의 상대는 아직 그였다.

세 번째에 다시 카르덴과 오르덱스가 나왔다. 첫 두 라운드와 마찬가지로 표식 A, B, C가 비워졌다. 하린은 자기 화면의 후면 태그 규칙을 훑었다. 상대 등 뒤의 공통 패드에 손을 닿게 하면 한 점. 넘어뜨리거나 밀어야 하는 규칙이 아니었다. 후면으로 돌아갈 때 등 뒤의 벽과 경계를 함께 봐야 했다.

시작. 오르덱스가 안쪽 통로에서 먼저 방향을 바꿨다. 20초에 B가 시온의 색이 됐다. 하린은 중앙 A를 바라보다 카르덴을 뒤로 한 걸음 뺐다. 시온은 B에서 C로 가는 짧은 길을 열어 둔 채 서 있었다. 그 길에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하린의 손가락이 스틱 위에서 잠시 멈췄다. 1화의 B 앞에서도, 6화의 예솔전 첫 라운드에서도 그녀는 열려 있는 좁은 길을 점수로 생각했다.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과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하나로 세었다. 이번에는 뒤로 뺀 한 걸음 덕분에 두 발이 어느 방향으로 돌아서도 선 안에 있었다.

하린은 C로 가는 바깥쪽 길을 골랐다. 오르덱스가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시온은 하린이 A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리라고 보았을 것이다. 그는 C로 나가는 길목에 기체를 한 번 세웠다가 방향을 다시 틀었다. 하린은 좁은 틈을 파고들지 않고 넓은 쪽으로 카르덴을 보냈다. 43초에 C를 먼저 밟았다. 1 대 1. 중앙 A는 여전히 꺼져 있었다.

관객석에서 누군가 “이제 A!”라고 외쳤다. 하린의 엄지가 잠깐 안쪽을 향했다. 시온의 오르덱스가 중앙으로 몸을 돌렸다. 가장 눈에 띄는 길과 가장 안전한 길이 겹치지 않았다. 하린은 뒤로 한 걸음 더 뺐다. C에서 곧장 A로 들어가지 않으면 시온이 먼저 A를 밟을 수 있었다. 그래도 하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시온이 카르덴의 진입을 기다리며 오르덱스를 벽에 비스듬히 세운 순간, 등의 공통 접촉 패드가 하린의 바깥길 쪽으로 열렸다. 안쪽에서 보면 숨겨지는 면이었지만, 하린은 지금 바깥에 있었다. 그녀는 카르덴을 달리게 하지 않고 짧게 방향만 바꿨다. 손을 앞으로 뻗자 팔의 잠금쇠가 버텼다. 손끝이 오르덱스의 등 패드에 닿았다.

86초. 짧은 접촉음이 울렸다. 후면 손 태그, 하린 1점.

시온이 오르덱스를 빼려 했을 때는 이미 판정이 들어갔다. 중앙 A는 끝내 누구의 색도 되지 않았다. 하린은 마지막 남은 시간에 A로 달려가지 않았다. 두 발을 선 안에 두고 안전하게 멈췄다. 종료음이 울렸다. 라운드 하린 2 대 시온 1, 경기 2 대 1. 하린이 결승에 올랐다.

시온은 전광판보다 주행선을 오래 봤다. “내가 열어 둔 길로 안 왔네.”

“열어 둔 건 알아요.”

“그런데?”

하린은 카르덴을 두 손으로 회수했다. “그 길은 내가 고를 수 없었어요. 빠져나올 자리가 없었으니까.”

시온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채점을 마쳤다는 표정이 되는 것이 싫어서 하린은 곧바로 덧붙였다.

“바깥길은 제가 골랐어요.”

“그래. 그건 네 경기였지.”

둘은 기체 검사대까지 함께 걸었다. 하린은 주행 기록에 시온의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그에게 배운 조종이 있었고, 그 덕분에 본 길도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에 조종기를 쥔 사람은 자기였다. 다미의 경기가 다음 순서로 잡혀 있었다. 하린은 결승 상대를 미리 정해 놓은 사람처럼 관람석에 앉고 싶지 않았다. 다미가 자신만의 경기로 이 자리에 오는 동안, 하린이 할 일은 그녀의 라운드를 똑바로 보는 것이었다.

《링워크》 8화 · 허용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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